때는 바야흐로 우수를 지나 경칩을 향하고 있다. 기승을 떨치던 추위는 어느덧 잦아들고 서서히 봄기운이 불어오면서 산천초목이 기지개를 켜는 듯하다. 요즘같이 꽃샘추위가 찾아오면 어김없이 감기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가족이나 동료 중에 꼭 한 두 사람 생길 때다.
내 어렸을 적 감기가 걸리더라도 좀처럼 병원에 가는 일은 없었는데 그래도 감기가 심하다 싶으면 병원에 가서 주사 한 방을 맞고 와야 낫는 느낌이 들었고, 실제로도 그렇게 해서 감기 치료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감기는 바이러스에 의한 질환인데 반해 주사는 세균을 억제하는 항생제이기에 이치는 안 맞지만 막연한 기대감으로 주사를 맞았으니 반드시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 더 큰 요인으로 작용했을 터이다.
그동안 항생제 남용이 우리 몸에 안 좋은 영향을 준다고 막연하게만 알려져 있었고, 정확한 원리에 대해서는 아직 규명이 안 되었는데, 근래에 카이스트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등의 공동 연구팀에서 항생제 남용이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규명되었다.
항생제 남용이 바이러스 방어능력 떨어뜨려
우리 몸 안에는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의 수보다 10배나 많은 미생물들이 공존하고 있다. 이들 미생물들은 우리가 미처 합성하지 못하는 비타민을 만들어 내거나 다양한 효소를 분비해 음식물의 소화를 도와 에너지원을 제공하기도 한다. 또한 우리 몸에 서식하고 있는 아주 작은 미세한 녀석들에 의해 적절한 면역시스템이 구축돼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 병원균의 우점 내지 침입을 방지하기도 한다. 그런데 항생제에 의해 체내에 서식하던 미생물들의 불균형이 초래되면서 면역력 저하로 이어지고 급기야는 바이러스 방어능력을 떨어뜨리게 한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쥐에게 항생제를 투여하였을 때 사이토카인(몸에 상처가 났을 때 분비되는 물질)이 대량으로 생산되는 반면, 항바이러스 역할을 하는 인터페론 생산이 안 되는 것을 확인하였다. 또한 해로운 미생물들이 우점하면서 상피세포에 손상을 입힐 수 있는 단백질 분해 효소를 왕성하게 분비하는 것도 관찰하였다. 항생제를 투여하여 발병 원인균만 죽일려고 했는데 그것이 우리 몸의 전체 면역 체계에도 영향을 줘 병에 취약한 몸이 된다는 것을 밝힌 셈이다.
견제와 협조 속에 조화를 이뤄가는 토양 속 미생물
토양을 연구할수록 우리 몸의 작동 원리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항생제를 남용함으로 인체의 면역력이 떨어져 질병에 취약한 몸이 되는 것이 토양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흙속에는 다양한 미생물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고 있다. 식물이 만들어내지 못하는 영양분을 만들어 식물에 공급해주기도 하고, 유기물을 분해하여 식물이 흡수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하는 등 미생물과 식물은 끈끈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토양 내에서는 수없이 많은 미생물들끼리 견제와 협조를 거듭하면서 복잡하지만 나름대로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토양 속에 화학농약이나 화학비료가 투입되면서 미생물간의 균형이 깨지고 특정 미생물이 우점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렇게 균형이 깨짐으로 토양에 병이 생기는 것이 토양병 발생 원인 중의 하나이다. 특이하게도 우리에게 해를 입히는 병원균들은 화학농약이나 비료에 내성을 갖고 있기라도 한 듯이 유익한 미생물들에 비해 더 잘 견뎌내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 남게 되는 녀석들이 토양에서 우점을 하게 되고, 이러한 녀석들에 의해 토양 생태계가 좌지우지 되는 것이다. 최후의 승자는 유익균보다는 병원균일 확률이 높다. 병 발생을 억제하기 위해 방제제를 살포하더라도 병이 발생된 원인이 병원균에 의한 단독 원인이 아닌 토양의 미생물상의 다양성 파괴에 의한 것이기에 방제제 살포 후에도 병이 재발되곤 하는 것이다.
토양 미생물 다양성 무너지면 토양병 발생 더 쉬워
토양 미생물의 다양성이 무너지고 일부 미생물들만이 우점화되는 편협화 현상에 이르면 토양병 발생이 쉬워진다. 농작물을 재배하다 보면 역병이나 시들음병, 청고병 등 많은 병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면 농민들은 당연히 병을 방제할 수 있는 적당한 친환경농약이나 화학 농약을 살포해 병을 방제한다. 그래서 주위에 알음알음으로 병에 잘 듣는 약제가 무엇인지 물어보기도 하고 방제할 수 있는 방법들을 부지런히 배우러 다니기도 한다.
그런데 병이 발생되는 원인을 생각해 보면 병원균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토양 환경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직접적인 원인은 병원균이겠지만 눈에 보이는 대로 병원균에만 초점을 맞추어 그것만 방제하기 위해 이약 저약 갖다 사용하다보면 토양에 있는 다른 미생물들에게도 피해가 안 간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방제제를 무조건 뿌리지 말고 토양 환경을 지금 당장 바꾸자는 말은 아니다. 당장은 방제제 처리로 급한 불을 끄되, 장기적인 안목에서 토양 미생물 다양화를 꾀하여 병원균이 우점할 수 없는 환경 조건을 서서히 만들어나가자는 것이다.
우리 몸에 항생제가 남용되어 우리 몸의 미생물상에 영향을 미치게 되니까 면역체계가 약해지더라는 연구결과가 우리 몸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토양에도 똑같이 적용 되는 것이다. 우리 토양에 화학농약이 살포되어 토양속 미생물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그러다 보면 땅의 힘(地力)이 약해져 병 발생에 취약한 토양이 되는 것이다. 우리 몸의 생리와 흙의 생리가 신기할 정도로 맞아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