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법, 그리고 자살자와 농약

2010.04.21 15:40:24

농약 음독자살이 문제는 문제다. 해마다 1만2700여명의 자살자 중 2000여명이 농약을 마신다. 일반인들이 ‘농약’하면 ‘독극물’이라고 인식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게다. 그 중심에는 늘 ‘그라목손’이 자리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농림수산식품부와 농촌진흥청은 그런 이유를 들어 ‘특정품목’의 등록을 취소하고 재등록을 막을 수 있는 ‘농약관리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농약이 ‘사람과 가축에 해로운 농약으로서 그 적절한 해독방법이 제시되어 있지 않은 경우’에 해당하면 신규 등록 및 재등록을 보류할 수 있고, 기존 제품의 경우에도 직권으로 품목등록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자살용으로 ‘악용’되는 ‘그라목손’을 아예 없애버리겠다는 취지이다. 농약관리법이 지난 3월 28일자로 개정됐는데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추가사유’를 신설하는 개정안을 정부입법으로 발의하려는 까닭이다.

나름 공감하면서도 개운치가 않다. 적절할진 모르되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은 아닌지 걱정이다. 그라목손이 자살용으로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법’으로 재등록을 막겠다는 것이지만, 이는 그라목손을 마시고 자살하는 행위를 막을 수는 있으되 ‘자살’ 자체를 막을 수 있는 해결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라목손은 농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농약”으로 인식될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농약 본래의 용도만을 놓고 보면 그만한 농약도 드물다는 반증인 셈이다.

물론 “특정농약을 없애 단 한사람의 목숨만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일이지 않느냐”는 입법추진 관계자들의 입장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런 논리대로라면 자동차, 부엌칼, 등산용 밧줄, 수면제 등 농약보다 훨씬 손쉽게 구할 수 있으면서도 자살에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도구들은 어찌할 것인가. 자살을 마음먹은 사람이 특정농약을 구하지 못해 자살을 포기한 사례는 아직 알려지지 않지 않은가.

농약 음독자살만이 문제라면, 단지 그 것 때문에 다시금 농약관리법을 손질할 요량이라면 극단적인 ‘추가사유’ 대신 순기능과 역기능을 충분히 고려한 ‘제대로’된 관리방안을 법으로 규정하는 것이 맞다. 일본의 경우 ‘그라목손’이라는 이름을 못 쓰게 하고 성분함량을 대폭 줄인 혼합제를 만들어 음독자살률을 현격히 낮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늦은 감은 없잖으나 우리 농약업계에서도 그런 노력들이 시작됐다.

자살방지는 사회적으로 관심을 갖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강구할 필요성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이 특정농약을 없애기 위해 ‘법’을 바꾸는 것도 그렇거니와 농약 음독자살은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자살 자체를 방지할 수 있는 해결책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자살을 기도하는 자가 해당농약을 구할 수 없어 다른 방법으로 자살한다면 그 효과 보다는 농업인들의 농작업 편리성이나 기업의 이익을 침해하는 부분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입법에 의해 보호되는 순기능보다 침해되는 역기능이 더 커서는 안 될 일이다. 법익의 균형성에 맞지 않는다. 농약관리법상 ‘농약의 정의’에도 어긋난다. 농약은 식물에만 사용하는 ‘작물보호제’이자 인축이나 환경 등에 안전성이 확보될 때만 등록․제조․판매가 가능하도록 철저히 관리되고 있다. 반대로 농약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되 그 자체로 독성을 지닌다. 이를 ‘악용’해 자살하는 것까지 소위 작물보호제인 농약의 책임인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법’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뉴스관리자 newsam@news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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