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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의 먹이 이야기

미생물 활용의 핵심은 미생물을 많이 뿌리는 것보다,
무엇을 잘하는지 알고,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 만들어주는 것

기상이변이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한쪽에서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가뭄과 폭염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우리나라의 여름도 예전과는 확실히 달라졌다. 장마라고 하면 며칠 동안 비가 오락가락하던 모습을 떠올렸는데 요즘은 짧은 시간에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졌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푹푹 찌는 폭염이 찾아온다. 덥기도 덥지만 습도가 높아 에어컨 없이는 견디기 힘든 날이 많아졌다.


40~50년 전에도 여름은 분명 더웠지만 지금처럼 에어컨을 하루 종일 틀어놓고 지내지는 않았다. 더운 여름날 밥맛이 없어서 밥 먹기 싫다고 하면 어머니가 찬물에 밥을 말아주곤 했다. 거기에 잘 익은 열무김치를 얹어주셨는데 어린 아들이 먹기에는 열무가 좀 컸던 모양이다. 엄마가 열무김치를 입으로 베어 먹기 좋게 잘라 물 말은 밥 위에 올려주시면 어느새 한 그릇을 뚝딱 먹어치우곤 했다. 지금이라면 깨끗한 가위로 잘라주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 시절에는 그렇게 자식들을 키웠고 우리도 잘 자랐다. 엄마는 먹기 힘든 커다란 음식을 사랑하는 아들이 먹기 좋게끔 잘라주셨다.


자기 몸 밖으로 일종의 ‘소화액’을 내보내
커다란 먹이를 먼저 잘게 자르는 것

그런데 재미있게도 미생물의 세계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미생물이라고 해서 아무 음식이나 덥석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토양 속에 있는 볏짚이나 식물 잔사, 단백질, 전분 같은 물질은 미생물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커다란 먹이다. 이런 물질을 그대로 이용하기 어려운 미생물도 많다. 누군가 먼저 잘게 잘라주어야 하는데, 여기에서 등장하는 것이 ‘효소(enzyme)’다.

농업용 미생물로 많이 사용하는 고초균을 비롯한 여러 바실러스(Bacillus)속 미생물은 단백질을 분해하는 프로테아제(protease), 전분을 분해하는 아밀라아제(amylase) 등 여러 세포외 효소를 만들어낸다. 쉽게 이야기하면 자기 몸 밖으로 일종의 ‘소화액’을 내보내 커다란 먹이를 먼저 잘게 자르는 것이다.


단백질은 작은 펩타이드와 아미노산으로, 전분과 같은 탄수화물은 미생물이 이용하기 쉬운 작은 포도당으로 분해된다. 그러면 처음에는 이용하기 어려웠던 유기물이 다른 미생물의 먹이가 된다. 한 미생물이 차려놓은 밥상을 다른 미생물이 받아먹는 셈이다. 술을 만드는 과정도 비슷하다. 쌀에는 전분이 많지만 효모가 전분을 그대로 술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먼저 누룩에 존재하는 곰팡이 등이 만들어 낸 효소가 전분을 당으로 잘게 분해해준다. 그제야 효모가 이 당을 이용하여 알코올을 만들어낸다. 우리 조상들은 미생물이라는 존재조차 모르던 시절부터 서로 다른 미생물의 역할을 절묘하게 이용해 술과 장을 만들어왔던 것이다.


만약에 우리 몸을 미생물만큼 아주 작게 만들어 토양 속으로 들어갔다고 상상해보자. 그곳에는 수확하고 남은 작물의 뿌리와 볏짚, 퇴비에서 유래한 유기물, 죽은 곤충과 미세한 생물의 사체까지 온갖 것들이 널려 있을 것이다. 사람 눈에는 그저 흙으로 보이지만 미생물에게는 거대한 식당이나 마찬가지다. 문제는 미생물마다 분해할 수 있는 음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녀석들은 섬유질 분해를 잘하고, 또 다른 녀석들은 단백질 분해 능력이 뛰어나다.


사람도 궁합이 있듯 미생물에도 궁합이 있는 셈
또 어떤 미생물은 유기산을 잘 만들거나, 식물병원균을 억제하는 물질을 생산한다. 한 가지 미생물에게 토양에서 필요한 모든 일을 맡길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 요즘 필자는 농민들에게 미생물을 설명할 때 단순히 “어떤 균이 좋다”는 이야기보다 ‘이 미생물이 무슨 일을 하는가’를 먼저 보라​고 강조한다. 고초균, 효모, 유산균, 광합성세균을 무조건 여러 가지 섞는다고 좋은 미생물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서로의 특성과 역할을 고려해 조합해야 한다. 미생물끼리 서로 도와줄 수도 있지만 반대로 한 녀석이 만들어 낸 물질 때문에 다른 미생물의 성장이 억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도 궁합이 있듯 미생물에도 궁합이 있는 셈이다.
그중 고초균은 농업적으로 활용하기 좋은 특징을 여럿 가지고 있다. 다양한 유기물을 분해하는 효소를 생산하는 균주가 많고, 포자를 만들 수 있어 건조나 영양 부족과 같은 불리한 환경에서도 비교적 잘 견딘다. 게다가 일부 고초균은 이툴린(iturin), 펑가이신(fengycin), 서팩틴(surfactin)과 같은 생리활성물질을 만들어 식물병원성 미생물과 경쟁하기도 한다.


농업 현장에서 미생물을 평가할 때 여전히 가장 먼저 보는 것이 균수, 즉 CFU이다. “1㎖에 몇 마리 들어 있습니까?”, “10억 마리입니까, 100억 마리입니까?”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물론 미생물의 밀도는 중요하다. 하지만 미생물이 많다고 반드시 일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많이 모여 있다고 그 회사의 생산성이 무조건 높아지는 것은 아니듯, 중요한 것은 그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느냐이다. 미생물 역시 숫자와 함께 어떤 효소를 생산하는지, 어떤 유기산을 만드는지, 식물생장촉진물질이나 항균성 물질을 얼마나 생산하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질긴 열무김치를 먹기 좋게 잘라주셨듯이 토양 속에서도 수많은 미생물이 서로의 먹이를 만들어주며 살아간다. 어떤 녀석은 큰 유기물을 잘게 자르고, 그 옆의 녀석은 그것을 받아먹어 유기산을 만들고, 또 다른 녀석은 작물의 뿌리 주변에서 병원균과 경쟁한다. 결국 미생물 활용의 핵심은 미생물을 많이 뿌리는 것보다, 그 녀석들이 무엇을 잘하는지 알고,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미생물을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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