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농업기술센터에서 미생물 강의하며 농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저 집 논은 뭘 해도 벼가 잘돼”, “우리 밭은 이상하게 농사가 잘 안돼”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같은 동네에서 심지어 옆 집인데도, 같은 품종을 심고 비슷하게 비료를 줬는데도 어느 논은 벼가 잘되고 어느 논은 시원찮다. 토양을 분석해 봐도 pH나 유기물, 질소, 인산 함량이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데 작황은 서로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도대체 이유가 뭐지?”라고 궁금해하는 분들이 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 필자는 정답이 토양 속 미생물에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최근 농촌진흥청에서 이를 뒷받침할 만한 재미있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농촌진흥청 연구진은 전국 60곳의 논에서 토양을 채취하여 벼 생산량이 높은 논과 낮은 논의 미생물을 분석했다. 그런데 벼농사가 잘되는 논에서 유독 많이 발견되는 미생물이 있었다. 이름도 생소한 ‘지오모빌리박터(Geomobilibacter)’라는 녀석이었다.
또 미생물들이 서로 연결되어있는 관계를 분석해보니 ‘콘텐도박터(Contendobacter)’라는 미생물이 벼 생산량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핵심 미생물로 나타났다. 그동안 우리는 농사를 잘 짓기 위해 토양의 질소가 얼마인지, 인산과 칼리가 얼마나 들어 있는지를 분석했다면 이제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이 논에는 어떤 미생물이 살고 있는가?”를 살펴봐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20여년 전만해도 토양 미생물을 연구하려면 미생물을 분리해 하나씩 확인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토양 마이크로바이옴 분석’기술이 발달하여 토양에 들어 있는 미생물의 DNA를 직접 분석하여 어떤 미생물이 살고 있는지를 밝혀낼 수 있다. 벼농사가 잘되는 논에서 발견된 ‘지오모빌리박터’라는 녀석은 철의 환원과 질소순환에 관여하는 미생물이다. 특히 논은 물을 대기 때문에 밭과 달리 산소가 부족한 환원 상태가 쉽게 만들어지는데 지오모빌리박터는 토양 양분의 순환 과정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콘텐도박터’ 역시 생소한 미생물이지만, 벼 수량과 연관된 미생물을 활성화하거나, 질소 순환 기능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이런 미생물들을 투입한다고 해서 벼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미생물이 자연스럽게 우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먼저이다. 이번 농촌진흥청 연구에서 더욱 흥미로운 것은 특정 미생물 두 종류보다 고수량 논의 미생물 군집 자체가 달랐다는 점이다.
연구 결과 벼 생산량이 높은 토양은 낮은 토양에 비해 세균의 다양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 결국 농사가 잘 되는 흙에는 미생물이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는 이야기이다.
토양 내 미생물 다양성에 의한 영향은 고추, 오이, 호박, 참외와 같은 원예작물에서도 비슷한 연구 결과가 계속 나오고 있다. 고추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퍼넬리포미스(Funneliformis sp.)라는 균근균을 뿌리에 처리했더니, 방선균과 트리코더마와 같은 식물 생육이나 병원균 억제와 관련된 미생물들이 증가한 반면, 시들음병원균인 Fusarium과 같은 일부 병원성 곰팡이는 감소했고 고추의 생육과 과실 수량은 좋아졌다.
오이 재배 토양에서는 고초균 종류인 Bacillus와 Flavobacterium이 수량 증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데, 고초균은 식물이 이용하기 어려운 인산을 이용가능한 형태로 바꾸는 능력이 있고, 다양한 효소를 분비하고 철 흡수율을 높여 오이 수량을 최대 35%까지 증가시킬 수 있다. 근균근을 처리한 호박에서도 직접적인 영향보다 뿌리 주변에 방선균과 트리코더마와 같은 유용 미생물이 증가하여 생육이 증진된 반면, 병 발생은 줄었다는 연구결과가 보고되었다.
사람도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어도 장이 건강하지 않으면 영양분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것처럼 작물도 마찬가지다. 비료를 아무리 많이 줘도 뿌리 주변의 미생물 생태계가 무너져 있으면 양분순환이 원활하지 않고 병원균이 우점하기 쉬워진다. 반대로 건강한 토양에서는 수많은 미생물이 서로 역할을 분담하는데, 어떤 녀석은 공기 중 질소를 고정하고, 어떤 녀석은 토양에 단단히 붙어 있는 인산을 풀어준다.
또 어떤 미생물은 철과 같은 미량원소를 식물이 이용하기 쉽게 만들고, 다른 녀석은 식물의 뿌리가 잘 자라도록 생장촉진물질을 만든다. 고초균이나 방선균처럼 병원성 곰팡이를 억제하는 항생물질을 만들어내는 녀석도 있다.
‘좋은 균 한 마리를 찾는 기술’에서
‘좋은 미생물 생태계를 만드는 기술’로 발전해나가야
이렇듯 토양은 단순히 작물의 뿌리를 붙잡아주는 흙덩어리가 아니라, 수만 종류의 미생물이 서로 먹고 먹히고, 경쟁하고 협력하면서 작물을 키워내는 거대한 생태계이다. 그래서 필자는 농업 미생물을 이야기할 때마다 미생물의 숫자만 보지 말자고 강조해왔다. 배양액 1㎖에 1억 마리가 들어 있느냐, 10억 마리가 들어 있느냐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미생물이 들어 있고 그 녀석이 무슨 일을 하느냐이다.
이번 벼 연구가 바로 그것을 잘 보여준다. 수천, 수만 종류 가운데 생산량과 밀접하게 연결된 몇몇 핵심 미생물이 따로 존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정하게 좋은 미생물 한 종을 찾아 많이 넣는 것만이 결코 정답은 아닐 수 있다. 앞으로 농업 미생물은 ‘좋은 균 한 마리를 찾는 기술’에서 ‘좋은 미생물 생태계를 만드는 기술’로 발전해나가야 한다.
앞으로 토양검정표에 pH와 EC, 유기물 함량뿐 아니라 ‘우리 밭에는 어떤 미생물이 살고 있는가’라는 정보가 함께 표시되는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미생물 농법 문의 cobio97@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