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사철이 본격적으로 다가오면서 연구소도 분주해졌다. 북쪽 철원에서부터 나로호 발사대가 있는 고흥과 남쪽 제주도까지, 전국 각지에서 토양 시료가 택배로 속속 도착하고 있다. 본격적인 농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보다 나은 수확을 기대하며 토양 분석을 의뢰하는 농민들의 의욕과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에 우리 연구소에서는 무상으로 토양 분석을 진행하는데 간단한 이화학 분석은 물론, 미생물과 선충 분석까지 함께 수행하고 있다. 특히 선충을 분리해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과정은 늘 신기하고도 재미있는 순간이다. 비닐봉지에 담긴 흙더미만 보면 생명력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지만, 현미경 너머로 보이는 토양 속 세계는 상상 이상의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선충을 비롯한 다양한 미소 동물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슬라이드 글라스 위를 종횡무진 돌아다니는 모습은 마치 살아 숨 쉬는 작은 세상을 엿보는 듯하다. 아메바나 섬모충, 편모충을 비롯해 다양한 종류의 선충들이 공존하며 토양 생태계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조치원에 있는 배 과수원을 방문하여 토양을 뒤적거리던 중 선충을 잡아먹는 포식성 선충을 발견하였다. 일부 포식성 선충은 토양을 자세히 보면 육안으로도 보일 정도로 큰 선충인데 이 녀석들은 특이하게도 자신의 동족은 잡아먹지 않고 다른 종류의 선충을 잡아먹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같은 종의 선충끼리 분비하는 페로몬에 의해 적군인지 아군인지를 정확하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한 달에 두 번씩 주기적으로 토착 미생물 배양액을 뿌려준 배 과수원은, 화사한 봄날의 기운에 맞춰 땅이 포슬포슬하게 부풀어 오른다. 발을 디딜 때마다 푹신하게 꺼지는 촉감이 발끝으로 전해지며, 마치 땅이 살아 숨 쉬는 듯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미생물 처리구에서는 무처리구 대비
약 65%의 선충의 밀도가 감소되는 것을 확인
최근 우리는 선충 방제에 특화된 미생물인 Bacillus velenzensis Nema-07(바실러스 벨레젠시스)을 제형화하여 방제 시험을 진행하였다. 토양 10g당 선충이 300마리 이상 서식하는 토양에 2차 대사산물이 포함된 미생물 배양액을 적용한 결과, 몇 차례 반복시험을 통해 다행스럽게도 미생물 처리구에서는 무처리구 대비 약 65%의 선충의 밀도가 감소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결과는 미생물을 활용한 생물학적 방제가 실제로 효과가 있음을 보여준 고무적인 사례이며, 앞으로 다른 작목에 반복 실험을 통해 제품의 효능을 더욱 면밀히 확인해갈 예정이다. 흥미롭게도, 이번 실험에서는 선충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선충뿐만 아니라 토양 응애도 함께 분리되었다. 일반적으로 화학살충제를 처리한 토양에서는 응애가 거의 사멸해 관찰되지 않았지만, 미생물 제제를 처리한 토양에서는 응애가 여전히 발견되어 약제 처리 종류에 따른 생물 반응 차이를 엿볼 수 있었다.
토양 속 미생물 간의 정교한 상호작용과
생물 다양성의 깊은 잠재력을 다시금 실감
이는 아마도 화학 약제가 응애를 즉각적으로 사멸시키는 반면, 미생물 제제는 보다 완만하고 점진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미생물 처리구에서 관찰된 응애의 사체에서 곰팡이 균사가 몸체를 뚫고 자라나는 모습이 확인되었다는 점이다. 응애 표피에 곰팡이 균사가 피어있는 모습이 관찰된 것이다. 선충 방제를 목적으로 했던 이번 처리에서 뜻밖에도 곰팡이에 의해 응애가 자연스럽게 제어되는 장면은, 토양 속 미생물 간의 정교한 상호작용과 생물 다양성의 깊은 잠재력을 다시금 실감하게 해주었다.
자연스럽게 활성화된 곤충병원성 곰팡이가 응애를 제어한 사례
이러한 현상은 미생물 제제가 지닌 본질적인 특성을 잘 보여준다. 미생물 살충제나 식물 추출물을 기반으로 한 유기농업용 친환경 자재는 화학농약에 비해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효과의 발현은 다소 느릴 수 있지만, 그 대신 토양 생태계에 미치는 부작용은 현저히 적고, 오히려 기존에 토양 속에 존재하던 유익한 길항 미생물의 활성을 자극하거나 되살리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번 관찰에서도, 미생물 배양액에 포함된 2차 대사산물이 응애를 제어하는 곰팡이의 활성을 유도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자연스럽게 활성화된 곤충병원성 곰팡이가 응애를 제어한 사례로, 미생물을 활용한 생물학적 방제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발견이라 할 수 있다.
토양 속 생물 다양성을 논할 때 미생물은 결코 빠질 수 없는 핵심 요소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 작은 존재들은 토양의 건강과 작물 생장에 있어 실질적인 ‘설계자’ 역할을 하고 있다. 방선균은 토양 특유의 냄새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병원성 곰팡이를 억제하며, 특정 세균은 뿌리 주변에서 질소 고정, 인산 용해 등으로 식물에 직접적인 영양을 제공한다. 어떤 곰팡이들은 뿌리 내에 공생하면서 식물의 면역력을 높이거나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데 기여한다. 최근 연구는 이러한 미생물 간의 복잡한 상호작용 네트워크에 주목하고 있다. 각각 독립적으로 보이는 미생물들이 사실은 정교한 균형 속에서 상생하고 있으며, 수분, 온도, 유기물 등 환경 조건의 변화에 따라 군집의 구조가 유동적으로 바뀐다. 이 때문에 농업 현장에서 미생물 분석을 기반으로 한 섬세한 토양 관리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조용하지만 끊임없이 토양을 살리고, 작물을 키우며, 생태계를 지탱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이제는 농민들 스스로가 미생물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 가능성을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장에서 직접 유익한 균을 배양하거나, 미생물 제제를 활용해 병해충을 관리하는 등 미생물은 단순한 보조 자원이 아닌, 농업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가 매일 밟고 서 있는 이 흙 속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의 미생물이 숨 쉬고 있다.
그들은 조용하지만 끊임없이 토양을 살리고, 작물을 키우며, 생태계를 지탱한다. 이들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일은 단순한 연구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농업과 인류의 미래를 위한 실천이다. 작지만 결코 작은 존재가 아닌 미생물. 그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하는 우리의 여정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오늘 농민과 이야기를 하다가 마지막 헤어질 때 하신 말씀이 강하게 남아있다.
“살아있는 미생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미생물이 싼 똥이 효과가 있는 것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