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최악의 피해를 주고 있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소강상태를 맞고 있다. 하지만 AI 재발방지를 위해서는 정부의 선제적인 방역대책 수립과 함께 사육환경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AI 의심신고 및 확진 주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현재 AI 발생농장은 339호로 산란계 146호, 육용오리 103호, 종오리 31호, 토종닭 24호, 육용종계 12호 등으로 집계됐다. 일주일전인 23일 기준 334호보다 소폭 증가하는데 그쳤다.
최근 의심신고 및 확진농장을 보면 23일 의심신고 0건, 확진 0건, 24일 의심신고 1건 확진 0건, 25일 의심신고 0건, 확진 3건, 26일 의심신고 및 확진 0건, 27일 의심신고 0건, 확진 2건이다. 28일부터 30일까지는 신고접수가 없는 것으로 집계됐다. 발생지역도 충남·북과 전남·북지역에서 지난달 10일 이후 신고 건수가 없다. 살처분 매몰현황(완료기준)도 23일 800농가 3260만수에서 30일 816농가 3278만수로 확산세가 주춤하고 있다. 이 가운데 닭이 2753만수로 가장 많았으며 사육수 대비 17.7%에 달한다.오리는 246만수로 사육두수 대비 28.1%가 처리됐다.
농식품부는 발생지역 인근에 여전히 바이러스와 오염원이 잔존하고 있기 때문에 차량 및 사람 등을 통한 감염위험이 상존하고 있다고 판단, 확산을 줄이기 위한 방역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이를 위해 매일 AI방역상황을 점검하는 한편, 고령농·장애인 및 축종별 위험요인을 차단하는 등 취약농가를 대상으로 방역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국가동물방역시스템(KAHIS)에 미등록된 농가에 대한 방역과 전담공무원 지정을 통한 방역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또 시군 사후관리팀 운영을 통한 농장별 분변 등 잔존물 처리실태를 점검하면서 방역대 1~3km지역에서 닭 출하시 정밀검사를 위한 시료 채취를 기존 분변에서 인후두에 피사체를 추가해 시행하고 있다.
계란 유통상인, 식용란 운반차량 및 운반용기 등에 대한 방역관리와 비발생시군의 AI 발생상황에 대비, 방역장비 및 인력을 배치하는 등 확산방지에도 주력하고 있다. 또한 농가의 도덕적 해이 방지를 위해 가축 전염병예방법 벌칙 및 살처분 보상금 기준을 엄격히 적용해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AI 방역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보완하고 지자체와 현장에서 건의한 사항들을 중심으로 토론회와 공청회를 개최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관계 부처 협의를 거쳐 AI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방역대책 주먹구구식 비판
이번에 발생한 AI는 H5N6형으로 2014년에 발생한 H5N8형 바이러스보다 병원성이 더 강했으며 전파속도도 훨씬 빨랐다. 2014년 당시 피해를 줬던 H5N8은 그해 1월 발생해 7월말 1차, 9월부터 이듬해 6월, 9월부터 11월까지 3차례에 걸쳐 피해를 줬다. 이 기간 동안 전국 19개 시군에서 총 38건의 피해가 접수돼 1937만 2000수가 살처분된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이번에 발생한 AI는 전국 10개 시·도, 41개 시·군에서 발생, 총 3278만수가 살처분되면서 2014년보다 피해가 69.2%가 더 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의 방역대책이 주먹구구식이라는 비판이다. 거의 매년 반복 발생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근본적인 대책으로는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AI는 한번 발생하면 질병의 특성상 치료가 어렵고, 사육가금의 폐사 및 살처분으로 인한 막대한 경제적 피해가 뒤따르기 때문에 근본적인 대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2015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내놓은 ‘2014년~2015년 AI확산원인 및 재발방지 방안연구(AI백서)’에 따르면 “AI는 급성전염성 질병이기 때문에 농장 간 거리가 짧은 밀집사육 지역에서는 질병의 확산속도가 매우 빠르다”며 “밀집지역에서 AI발생에 대비해 살처분 등에 필요한 인력 및 장비,매몰지 확보 등에 대한 대비가 철저히 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아울러 백서에서는 “AI발생 원인부터 오염원의 농장유입 및 가축 감염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오염물질을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며 “신속한 대응을 위해 KAHIS및 GPS차량관리 고도화,초동방역 및 역학조사 체계화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으나 대책 수립에 미흡한 결과가 드러난 셈이다.
AI백서는 재발방지 및 조기 종식을 위해 ▲국제 공조체계 구축 ▲예찰체계 정비및 조기 대응을 위한 알림시스템 운영 ▲철새 군집지에 대한 AI방역관리지구 설정 ▲국경검역 및 외국인근로자 방역관리 강화 ▲농가 및 지역별 방역체계 강화 ▲계열화 사업자 책임관리제도 도입 ▲소규모농가,전통시장 특별관리 ▲사육환경 개선 등을 제언했다.
공장형 축산 줄여야 확산 막을 수 있어
정치권에서는 정부의 초기대응 실패와 안일한 대처가 피해확산을 부추켰다고 비판했다.
국회 농림해양축산식품위원회 여야의원들은 매년 발생하고 있는 AI에 근본적인 대책보다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대처만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은 “전국 228개 시군 1곳당 가축방역관은 1.2명에 불과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가축방역관이 아예없는 곳도 있다”며 대안 마련을 촉구했다. 이외에도 의원들은 연례행사처럼 발생하는 AI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거점소독소의 방역강화와 소독약의 효용성 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AI연구소를 설립해 근본대책을 수립하는 것도 덧붙였다. 또한 환경단체 등 전문가들은 공장형 축산을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유럽연합은 2012년부터 밀집사육을 금지하는 법을 시행할 정도로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며 “AI를 근본적으로 줄일 수는 없지만 열악한 밀식 사육에서 오는 피해를 훨씬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