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통합의 길목에서, 농심(農心)을 먼저 세워야 한다.

2026.03.20 12:32:45

이재명 정부가 제시한 ‘5극 3특’ 정책은 수도권 일극 체제를 다극 체제로 전환하고, 지역 주도의 성장 거점을 육성하겠다는 국가균형발전 전략이다. 전국을 5개 초광역권(수도권·동남권·대경권·중부권·호남권)과 3개 특별자치도(제주·전북·강원)로 재편해 지역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같은 정책 기조에 발맞춰 전라남도와 광주광역시의 행정통합이 빠르게 추진되고 있다. 수도권 집중에 대응하기 위한 선도적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지역의 미래가 걸린 중대한 사안이 충분한 주민 의견 수렴 없이 시·도의회 의결 중심의 속도전으로 마무리되고, 특별법의 국회 통과만을 남겨둔 상황은 아쉬움을 남긴다.

 

국민주권을 표방하는 정부라면, 통합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정치·경제적 파장에 대해 보다 치밀한 검토와 사회적 합의를 선행해야 한다. 이에 몇 가지 우려와 제언을 밝히고자 한다.

 

1. 메가시티 담론 속 농업 소외 가능성

‘메가시티’ 구상은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에 대응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된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논리는 일견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경제적 불균형과 소외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특히 녹색의 땅이자 식량안보의 전략적 요충지인 전남의 뿌리 산업, 농업이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를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2. 통합의 ‘빨대 효과’와 재정 쏠림

경제적 통합은 양날의 검이다. 인프라를 효율화하고 행정 중복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거점 도시로 자원과 인구가 집중되는 ‘빨대 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통합 이후 예산과 정책의 무게추가 광주 도심과 인접 지역에 쏠릴 경우, 전남 외곽 지역은 상대적 박탈감과 공동화 현상을 겪을 수 있다.

 

3. 산업·투자 편중에 따른 지역 격차 심화

통합 직후 효율성을 명분으로 산업단지, AI, 모빌리티 등 신산업 분야에 예산이 우선 배정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전략산업 육성 차원에서 필요할 수 있으나, 상대적으로 낙후된 농어촌 지역에는 또 다른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투자 편중은 곧 지역 격차의 고착화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통합의 취지인 균형 발전과 배치된다.

 

4. 행정 효율화의 역설

행정구역 통합에 따라 공공기관 통폐합이 이루어질 경우, 농어촌 주민의 행정서비스 접근성이 저하될 수 있다. 공공기관 이전이나 축소는 지역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고, 이는 곧 지역경제의 자생력 약화로 연결된다. 행정 효율화가 오히려 주민 불편과 지역 소멸을 가속화하는 역설이 되어서는 안 된다.

 

5. 농업, 위기인가 기회인가

전남은 대한민국 식량주권의 핵심 축이다. 고령화가 가속되는 현실 속에서도 전남의 농가 인구는 약 27만 명에 달한다. 문제는 통합 지방정부 출범 이후 정책 우선순위가 도시형 서비스업과 첨단 제조업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다.

 

농업이 ‘전략산업’이 아닌 ‘보호·복지 대상’으로 전락한다면, 예산 비중 축소와 기술 투자 저하로 이어져 식량주권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그러나 통합이 반드시 위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광주의 AI·데이터 기술과 전남의 농업 자원을 결합한 스마트팜 클러스터 조성, 식품 가공·치유농업 등 6차 산업화는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또한 광주라는 대규모 소비시장을 배후에 둔 광역 단위 로컬푸드 직거래 체계 구축은 농가 소득 증대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결론은 숫자가 아닌 ‘사람’ 중심의 설계

통합은 행정구역의 단순한 결합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재설계하는 일이다. 진정한 상생을 이루려면 지역 농업의 창의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는 제도적 안전장치가 선행되어야 한다.

 

매년 약 5조 원에 이르는 정부 지원금 가운데 일정 비율을 농업 예산으로 명문화하고, 농촌을 도시의 배후지가 아닌 독립적 경제 주체로 설계해야 한다.

 

“찬물도 급히 마시면 체한다”는 말이 있다. 구호만 앞선 통합은 농업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 농민의 삶이 실질적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구체적 시뮬레이션과 확신 없이 추진되는 통합은 균형 발전이 아니라 ‘집중의 재포장’에 불과하다.

 

행정통합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다. 그 방향은 반드시 농심(農心)을 품은 균형과 상생이어야 한다.



뉴스관리자 newsam@news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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