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72세인 고인은 경북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지리학과에 다니다 4·19혁명에 참여했다. 1964년 김지하 시인 등과 함께 한일협정 비준을 반대하는 6·3운동에도 앞장서다 옥고를 치렀다. 이후 무위당 장일순 선생과 인연을 맺고 강원 원주 지역을 중심으로 주민자치와 협동조합운동, 생명평화운동에 매진했다. 1982~84년 가톨릭농민회장을 지냈으며 1986년 한살림농산, 1988년 한살림공동체생활협동조합을 설립해 친환경농산물 생산·유통의 저변을 확대하는 데 선도적 역할을 했다. 또 1991년 시작된 ‘우리밀살리기운동’에 공동대표로서 앞장섰으며, 1094년부터 2002년까지 사단법인 환경농업단체연합회 회장을 맡았다. 고인이 한살림을 통해 우리 사회에 던진 생명농업이라는 화두는 1990년대 친환경농업법 제정과 친환경농업 정책 및 관련 법·제도 마련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철탑산업훈장, 서울환경상 대상, 친환경농업대상, 정일형·이태형 자유민주상, 일가상을 수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