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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도 죽여도 죽지 않는 ‘진딧물’

태어나자마자 식물 잎에 구침을 박고 양분 빨아먹어
바이러스나 세균병도 옮길 수 있어

연구소 앞에 매실 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매년 깍지벌레 때문에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다. 나름대로 곤충 병원성 곰팡이를 연구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눈앞에 있는 해충 방제도 못 하면서 밖에 나가서 미생물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하기가 면이 서질 않는 것 같아 마음먹고 깍지벌레를 잡아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올해에는 깍지벌레보다 진딧물이 더 극성을 부리는 것이 아닌가! 아무래도 깍지벌레보다는 진딧물이 더 만만하다 싶어 식물추출물이 주성분인 친환경 농자재를 적정하게 희석해서 골고루 듬뿍 뿌려주었다. 그 다음날 관찰해보니 그렇게 징그러울 정도로 엄청나게도 많이 붙어있던 진딧물들이 모두 말라서 죽어있는 것을 보면서 나름 흡족해하고 있었다. 

 

5일이 지났을까 무심코 나무를 보다가 진딧물들이 신초 끄트머리에 다시 번식하는 낌새가 있어 다시 친환경 살충제를 뿌려주었더니만 진딧물들이 말라 버리면서 죽는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에 보니 다른 진딧물들이 또 붙어있는 것을 보았다. 다시 살충제를 세심하게 뿌려주고 오늘 아침에도 뿌렸는데 아직까지 진딧물을 완전하게 방제하지 못 하고 있다. 진딧물의 번식 속도를 도저히 감당해낼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무 한 그루에 발생하는 진딧물도 방제가 이렇게 어려운데 수 천 그루 이상의 농작물에 발생하는 진딧물 방제는 얼마나 어려울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에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인근의 학교 급식용 채소를 재배하는 친환경 농민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진딧물 방제하는 미생물 좀 소개해 달라는 통화 내용이었는데 상추에 진딧물이 발생하여 친환경 약제를 처리하였는데 진딧물에 내성이 생겼는지 이제는 그 어떤 약제도 듣지 않아 적당한 방법을 알려달라는 것인데 3일이 지났건만 아직 답변을 드리지 못 하고 있다. 어떤 농민은 진딧물 방제에 대해서 물만 뿌려도 죽는다고 하는 분도 만나보았지만 진딧물은 정말 방제하기 어려운 해충임에는 틀림없다. 


생식 주기가 매우 짧고 여러 세대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어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하는 것  

이 녀석들은 지들 마음대로 번식하는 방법을 터득해서 환경에 따라 형태를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날개를 달 수 도 있고 어떤 때는 날개를 떼어낼 수도 있다. 무성(無性)생식을 통해 새끼를 낳을 수도 있고 유성(有性)생식을 통해 알을 낳아 월동을 시킬 수도 있다. 


진딧물은 생식 주기가 매우 짧고 여러 세대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쉽게 말하자면 할머니 진딧물 속에 딸 진딧물이 있고, 그 딸 진딧물 속에 손녀 진딧물이 있는 방식으로 여러 세대가 한꺼번에 존재를 하고 있기에 기하급수적으로 번식을 하는 것이다. 많은 진딧물 종은 어느 정도 자란 새끼를 직접 낳기 때문에 태어나서 얼마 되지 않아 새끼를 낳을 수 있다. 새끼만 낳는 것이 아니라 이 녀석들은 태어나자마자 식물 잎에다 구침(口針;Stylet)을 박고 양분을 빨아먹을 수 있는 것이다.

구침을 여기저기 박다보니 바이러스나 세균병도 옮길 수 있어 병 발생의 원인 해충으로 우리에게 미움을 받는 대표적인 해충이다. 그래도 개미들과는 친해서 자기들 끼리 서로 도우며 살아가고 있다. 진딧물의 이러한 특징 때문에 그동안 진딧물을 죽여도 죽여도 또 발생하고 그랬던 것이다. 어쨌든 진딧물도 험한 세상에서 나름대로 먹고 살려고 무진 애를 쓰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진딧물을 방제하는 방법으로 멀구슬나무과에 속한 님나무(Azadirachta indica)에서 추출한 님오일(Neem Oil)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님오일의 주성분인 아자디락틴(Azadirachtin)은 해충의 성장과 번식을 억제하며 기피효과도 있어 친환경 살충원료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성분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나무에서 추출한 기름성분이다 보니 유화를 시켜야 실제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데 주위에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계면활성제를 활용하여 에멀젼된 상태로 살포를 해야 살충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국화과 식물에서 추출한 피레쓰린(Pyrethrin)은 강력한 살충성분으로 진딧물의 신경계를 교란시켜 빠르게 죽일 수 있는데 즉각적인 효과와 함께 빠르게 분해되어 사람에게 안전하고 환경에도 해를 끼치지 않는 성분이다. 다만 국화를 추출한 성분이라 가격이 다소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마늘에 들어있는 알리신(Allicin)과 고추에서 추출한 캡사이신(Capsaicin)도 해충을 기피시키거나 진딧물을 방제할 수 있는 성분들이다.   

진딧물의 천적을 이용해서 방제하는 방법도 있지만 실제 우리 연구소 앞에 있는 매화나무에 아직까지 무당벌레는 한 마리도 나타나질 않는 것 보니 천적을 이용하는 방법도 쉽지는 않아 보인다. 미생물 중에 곤충병원성 곰팡이라는 녀석들이 있다. 이 녀석들은 진딧물의 표피를 뚫고 들어가 진딧물을 죽일 수 있는 기특한 녀석들인데 보베리아(백강균)나 메타리지움이 여기에 속한다. 사람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고 해충만을 죽이기 때문에 생물 살충제로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제품으로도 출시되어 있는데 각 회사마다 제품 제조에 대한 노하우가 있어 효능이 다를 수 있다. 비티균은 잎을 갉아 먹는 해충들에 효과가 있기 때문에 진딧물처럼 구침을 잎에 박아서 흡즙을 하는 해충에는 아무래도 효과가 덜 할 것으로 보인다. 

 

진딧물을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까지 없다.
이제껏 진딧물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방제하는 방법들도 소개를 했지만 ‘진딧물을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까지 없다’라는 것이 결론이다.

그러나 우리 연구소 앞마당에 심어져 있는 매실나무에 붙은 진딧물을 죽이려고 약을 치면서 알게 된 것은 약을 칠 때에 계면활성제를 혼합해서 치니 효과가 더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제품 자체에 계면활성제가 포한된 것도 있겠지만 추가로 조금 더 넣어주니 진딧물에 약액이 묻는 것도 더 효과적으로 보였다. 


매화나무 진딧물을 방제할 때 주방에 있는 식기 세척용 세제를 1,000배(때로는 2,000배) 희석해서 살포하였는데 치자마자 현미경으로 관찰해보니 진딧물에 약제가 묻은 효과가 탁월하였다. 매화나무에 아직 약해나 약흔은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 작물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주방용 세제를 사용할 때 소량으로 작물 일부에 사용해보고 안전한 것을 확인한 후에 적용해보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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