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진흥청(청장 이양호)은 DNA를 이용해 주요 과수 품종을 구별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확립해 육종가의 권리를 보호하고 국내외 묘목의 불법 유통을 막아 묘목 유통 체계를 바로잡을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농진청에서는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에 맞춰 지속적인 과수 품종 개발에 노력한 결과, 1998년 ‘홍로’ 품종을 비롯해 사과 24품종, 배 31품종, 포도 13품종 등 많은 품종을 육성하게 됐다. 우수한 고품질의 국내 육성 품종이 해외에서 인기를 얻어 중국을 중심으로 재배면적이 늘고 있지만, 2001년 ‘황금배’ 묘목이 중국으로 무단 유출된 사례가 있어 품종의 관리와 보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무분별한 외국 품종의 도입과 묘목업체의 영세성 등으로 출처가 부정확한 대목과 품종이 유통되고 있고, 과수 묘목생산 및 유통현장에서 품종혼입 사례가 여전히 많이 발생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실정이다.
농촌진흥청 과수과는 과수 묘목의 잎이나 과실 등 형태적 특성의 조사 없이 소량의 잎 조직만으로도 쉽고 정확하게 품종을 구분할 수 있는 DNA를 이용한 과수 품종판별 시스템을 구축하게 됐다. 일반적으로 국내외 묘목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과수 묘목들은 1∼2년생의 어린 나무(유묘)로 주로 겨울철에 거래되는데 이때는 과실이 달리지 않고 품종 고유의 특성이 나타나지 않아 외관상으로 정확한 품종구분이 어렵다. 또한 새 품종들은 소수의 기존 품종을 양친으로 사용한 경우가 많아 유전적으로 매우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 형태적 형질만으로 품종 구별이 쉽지 않다.
따라서 잎에서 추출한 DNA를 이용해 사과 13종, 배 19종, 감 15종, 포도 16종, 복숭아 19종의 총 82종의 분자마커를 개발했다. 이 분자마커 조합에 의해 현재 재배되고 있는 대부분의 주요 사과, 배, 감, 포도, 복숭아 5과종의 총 178품종 판별이 가능하게 된다. 분자마커는 유전현상의 본질인 DNA의 염기서열 차이를 통해 식물체들의 유전적 차이를 쉽고 정확하게 구별할 수 있는 유전자표지를 말한다. 한편 겨울철에는 가지에서 DNA를 추출해 분석하기 때문에 생육시기에 관계없이 언제나 이용할 수 있고 또 간단한 실험기기만 갖춘 실험실에서도 분석 가능하다.
품종혼입에 따른 농업현장 애로기술을 해결
농진청 과수과에서는 이 기술에 대한 국내 특허출원과 등록을 통해 지적재산권을 보유한 상태다. 그리고 이 기술을 이용해 사과, 배, 포도 등 11건의 품종 확인을 지원해 품종혼입에 따른 농업현장 애로기술을 해결하기도 했다. 또한 지난 11일 연구기관과 선도 묘목업체 등을 대상으로 ‘분자마커를 이용한 과수 품종판별 기술이전’ 워크숍을 실시해 큰 호응을 얻었다. 앞으로 과수 품종 혼입을 방지하기 위해 묘목 생산자에게 품종보증 의무가 요구될 것이며 이 기술은 과수 묘목 생산유통시장에서 산업적으로 적용 가능해 품종혼입과 무단증식 등에 대한 문제 발생 시 객관적인 판별 기준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최인명 농진청 과수과장은 “이 기술이 국내 육성 신품종의 국외 무단유출을 방지해 품종 육성가의 권리를 보호하고 품종혼입으로 발생하는 분쟁을 최소화해 과수 묘목시장의 유통 안정화를 위한 과학적인 품종인증 시스템으로 이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과수 묘목 시장규모는 약 400억원 수준으로 전체 종자시장(5800억원)의 약 7%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 과수 묘목은 영세한 묘목업체 및 과수 재배농가에서 생산과 유통을 주도하고 있으며 묘목업체의 난립으로 체계적인 묘목 생산·공급 시스템이 부재한 상태다.
무등록업체의 생산기술의 낙후로 품종 및 계통관리 부실 및 바이러스 병 감염관리 부재와 출처가 정확하지 않은 대목과 품종이 유통돼 이력추적 불가능한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식물품종보호제도에 대한 이해와 실천의지가 부족한 업체에 의해 미등록 품종 또는 계통의 도입 및 특허등록 품종의 부정 유통 문제도 제기되고 있는 현실에서 DNA를 이용한 과수 품종판별 시스템 구축을 통해 묘목 유통 체계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DNA 추출에서 품종확인까지 5시간
개발한 기술로 품종판별에 걸리는 분석시간은 DNA 추출에서 품종확인까지 약 4~5시간이 소요되며, 분석비용은 1점당 약 7000원이 든다. 간단한 실험기기(PCR기기, 아가로즈 젤 전기영동장치 등)만 갖춘 실험실이라면 쉽게 분석할 수 있어 기술이전을 통해 농업기술원이나 과수 무병묘 생산·공급을 위해 설립된 중앙과수묘목관리센터(농림축산식품부 사업 시행기관)에서 직접 분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농업기술실용화재단에 기술이전을 계획하고 있어 품종 분석을 의뢰하고자 하는 묘목생산업체나 농업인들은 앞으로 실용화재단을 통해 품종 분석이 가능하다.
품종 권리보호 위한 인증 시스템으로 활용가능
품종판별용 분자마커는 잎 등 형태형질로 구별이 어려운 유목상태에서도 빠르고 정확하게 판별이 가능한 조기 판별기술로 추가 개발 없이 제품화와 산업화가 가능하다. 이 기술은 품종혼입과 무단증식 등에 대한 문제 발생 시 객관적인 판별 기준으로 활용돼 묘목시장의 유통 안정화와 품종육성가의 권리 보호를 위한 과학적인 품종인증 시스템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농식품부의 정책사업인 ‘과수 우량묘목생산 지원사업’에서 바이러스 무병묘 생산·공급을 위한 원원종 생산 시 품종의 신뢰도 제고를 위해 본 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앞으로 개발한 품종판별용 분자마커는 현장 적용성 검정과 육성된 새품종을 추가해 판별 가능한 품종 수를 확대할 예정이며 주요 과종의 대목품종에 대한 판별마커도 개발할 예정이다. 또한 유전체 분석을 통해 현재까지 판별이 어려운 사과 ‘후지’ 변이품종 등 변이계통 판별을 위한 분자마커 개발을 진행 중에 있다. 또 앞으로 이 기술이 현장에서 활발히 활용될 수 있도록 기술이전과 ‘분자마커를 이용한 과수 품종판별 매뉴얼’을 제작해 보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