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를 보증하지 못하는 유기농자재 공시 제도는 사용자를 우롱하는 처사라는 의견이 나왔다.
지난 2일 서울 학여울역 세택에서 개최된 ‘6.2데이 국제 세미나- 친환경 유기농업 발전을 위한 유기농자재 관리 현황과 개선’ 토론에서 사용자를 대표로 하는 측에서 유기농자재의 현 제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오갔다.
(사)환경농업단체연합회(회장 이상국)와 유기농업자재공시 및 인증기관협의회가 주관하고, 농촌진흥청, 한국친환경농자재협회-수출마케팅협동조합, 농협흙사랑, 한국농어민신문, 농기자재신문이 후원한 이날 세미나의 토론은 허장현 강원대 교수가 좌장을 맡아 진행됐다.
토론에는 김병호 iCOOP 이사, 유문철 단양군 친농연 사무국장, 안인 친환경농자재협회 부회장, 조동근 친환경인증기관협회, 최관호 흙살림연구위원, 한상균 농진청 사무관, 이남윤 농식품부 사무관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이날 사용자를 대표해 토론에 참석한 김병호 이사와 유문철 사무국장은 효과를 보증하지 못하는 유기농자재 공시 제도가 사용자를 우롱하고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김 이사는 “애초에 문제가 있었던 친환경 농자재들 때문에, KBS 파노라마 이후로 우리는 유기농업 생산자라고 하면서 농약으로 농사지은 사람들이 되어버린 상황”이라며 “이런 사태에서도 농자재 회사들은 적발된 농자재를 이름만 바꿔 등록하여 여전히 농민들을 갈취하고 있으니 참담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농자재중심으로 농업계가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현 상황에서는 농민들이 대처할 방법이 없으며 현 상황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유 사무국장 역시 김 이사의 의사에 동의를 표했다. 그는 “원고를 준비하면서 회의를 통해 영세업체들의 애로사항과 작목반의 얘기를 모두 들었다”며 “핵심은 병해충 관리 자재와 유기질 비료 문제라고 보는데 이는 보조를 통하든 자가 비용이 들던 농가가 가장 많이 비용을 투자하는 부분이 농자재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사용자인 농민, 농산물 농약 검출되면 인증 취소
유 사무국장은 “친환경 유기농사에서 가장 힘든 건 병해충 관리 문제인데 농자재 업자 입장에서는 공시 취소되면 그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농자재를 구입한 소비자로서의 농민으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다”며 “애초에 농자재에 농약이 혼입되어 있는데다 효과도 없는데 리콜조차 하지 않는 상황에서 신뢰가 없을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관행농민들이 사용하는 진딧물 살충제는 500리터에 팔천원밖에 안되는데, 유기농 자재와는 열두 배 이상 차이가 나는데 거기에 효과가 없으니까 두 배는 써야 한다고 하니 그렇게 되면 벌써 십만원이 훌쩍 넘는다”며 “그러니 판로 확보는 둘째 치고, 친환경 유기농업은 생산비가 많이 들고, 힘들어서 보조 없이는 할 수 없는 가짜 농업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니 가격이 적정한지 확인을 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유 사무국장은 특히 “현재 공시제도는 약효를 보증할 수 없다는 말 자체가 농민을 우롱하는 것이라 본다”며 “주제 발표를 하신 페기 마이어스 옴니(OMRI)총장도 효과는 보증하지 않는다는데, 과연 그게 옳은것인지 의문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기질 비료의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유 사무국장은 “친환경 농가는 유박 비료랑 축분 비료를 많이 쓰고 있고, 특히 유박은 인력 절감 때문에 현실적으로 선호했다”며 “유박의 원료가 수입이라는 점은 예전부터 지적되어 왔고, 특히 아주까리 박의 문제가 많이 거론되고 있는데 불신이 많고 항상 이 비료는 적정한 것인지, 깨끗한지 의문이 있을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특히 인근 농가들이 자가 제조를 하려고 해도, 인증기관마다 기준이 다 달라 이에 대한 기준 설정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동근 친환경인증기관협회 사무국장은 “농민들 입장에서는 인증 과정이 무척 어렵다”며 “인증 한번 받으려면 2~3년 정도 걸리는데, 한 번 취소를 당하거나 인증 표시를 못하게 되면, 그해 농사만 망치는게 아니라 1년 동안 재인증도 불가능하거니와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 등에 납품하던 농민들의 경우에는 바이어와의 경로조차 전부 차단당하게 되므로 농자재 문제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자재업체가 품질 보증하는 것은 당연
조 사무국장은 “비의도적 혼입률에 관한 것은 잔류 허용 기준치가 1/20로 설정이 되어 있는데, 농민들이 의도하지 않고도, 물이나 바람을 통해서 충분히 그 이상 농약 성분이 들어올 수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물론 원료업체의 잘못도 있겠으나 이 모든 것을 자재업체에서 총괄하여 정상적인 제품을 내야 하는게 당연한건데 그걸 억울하다고 하는 것은 당황스럽다”고 밝혔다.
그는 “친환경 유기농업의 목적이 무엇인가 친환경 유기농의 의미에 맞는 과정을 통해 친환경 농산물을 만들고, 그 결과물이 무농약이나 유기농이 되는 것이지, 과정을 무시한 채 최종농산물에서 농약이 나왔냐 안 나왔냐 만 가지고 유기농업의 정의를 내릴 수는 없는 것”이라며 “그런데 소비자뿐 아니라 전문가들도 이에 대한 오해가 많은 것 같은데 사실 잔류 허용기준이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 유통되어 있는 농산물들도 사실상 안전한 것이라고 생각되고, 농약이 검출되는 것은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잘못된 유기농 자재에 대한 철저한 사후 관리를 다시 한번 더 당부했다.
최관호 흙살림연구위원은 “우리 공시제도는 옴리 제도를 벤치마킹했는데 솔직히 비료관리법과 농약관리법에 등록된 물질만 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옴리가 인정해준다는 것은 소용이 없다”며 “화학비료는 공정규격이 이미 설정돼 있어 여기에 적합하기만 하면 재배시험 없이 등록이 가능한데 우리는 유기농자재를 위한 공정규격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위원은 “유기재배를 정말 권장하고 싶다면, 유기 비료 안의 성분들을 제대로 표시를 하든지 차라리 재배실험하는 비용으로 현금 지원을 해주시길 권한다”며 “국제 기준보다 더 엄격한 기준(품질인증제)을 만들어 달라고 하는데, 그 것은 거대 자재업체들에게만 이득이 되는데 현재 목록 공시에 들어가는 돈이 이백만원이라고 치면 품질인증은 이천만원 들게 되므로 자연스럽게 작은 업체들에 대한 차등이 생길 것이므로 품질인증제보다는 지금처럼 옴리의 인증제를 따라서 효과 있는 농자재를 쓰는 편이 훨씬 낫다”고 밝혔다.
보조적 도구인 자재, 의존도 너무 높아
이처럼 사용자 입장에서의 의견들이 쏟아지자 업계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안인 친환경농자재협회 부회장이 나섰다.
안 부회장은 “오랫동안 자재 분야에 종사해 왔던 만큼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히고 “원래 농자재는 유기농업을 돕는 보조적인 도구인데, 농업을 편하게 하려 하다 보니 중점적인 도구가 되어버린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2007년에 환농연과 강기갑 의원이 친환경 유기농업을 제도화시키자는 의미에서 자재 공시제를 도입하게 되었는데 운영이 잘 되었으면 좋을텐데 부작용이 있어서 문제”라며 “앞서서 농자재의 효과 문제를 거론하셨는데 자재업체도 억울한 점이 있다”고 밝혔다.
안 부회장은 “작년 KBS 파노라마 이후 농약 검출에 대한 정부 규제가 심해졌고 그 상황에서 수십개 업체가 취소되고 고발되었으며, 배상도 해주었다”며 “농약을 의도적으로 투입한 것이 아니라 중국 천연 원료 업체한테 농가와 농관원이 모두 속았던 것이며 국내 등록 안 된 농약들을 몰래 집어넣었다가 규제가 심하게 들어가니까 다시 그 원료들을 다 빼고, 그러면서 효과에 대한 불신이 생기고, 이런 악순환 때문에 병해충 자재는 사실상 공시 취소나 다름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안 부회장은 “당연히 농약 성분이 나와서는 안되지만, 책임을 통감함을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이런 사정도 있다는, 억울함을 말씀드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현재 농약 검사를 할때 기준이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유기농자재는 모두 희석해서 쓰는데, 그 희석배수를 전혀 고려해주지 않고, 원액에서 기준대로 농약을 검출하니까 당연히 걸릴 수밖에 없으니 이런 점 또한 고려하여 최종 농산물에서 농약이 얼마나 검출되는지를 기준으로 다시 잡아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양적 성장에 치중하다 부작용 생긴 것
한상균 농진청 사무관은 “지금까지의 문제에 답변을 일일이 드리기보다는, 문제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 및 반영해서 제도 개선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유기농업과 유기농자재 산업이 함께 성장하는 과정에서 양적 성장에 치중하다보니 KBS 파노라마 사태가 생겼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 사무관은 “이제 질적 성장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히며 “목록공시에 따른 품질관리 문제가 최종 소비자들인 가정주부들을 비롯한 국민 전체에게 영향을 끼쳤는데 이에 대한 신뢰 회복이 현재 친환경농업 발전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남윤 농식품부 사무관도 “저농약 인증 폐지, 검찰과 감사원의 감사, 거기에 언론 문제까지 겹치면서 국내 유기농업 규모가 작년보다 60% 정도로 줄어들었는데, 전체적으로 친환경 농정의 내실화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해석한다”며 “작년도 무농약이나 유기재배의 소비자 가격을 보면, 일반 농산물의 1.7~8% 정도 오른 가격으로 유통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가격과 양적인 면에서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를 균형 있게 만족시키고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 사무관은 “정책과 제도적으로 국민들 입장에서는 농자재 산업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며 “패널에 따라서 의견이 많이 달랐으나 모두가 친환경농업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던만큼 토론이 매우 잘되었다고 보고 오늘 나왔던 의견들을 종합하여 법률과 제도에 잘 반영토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이날 토론에 청중으로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유기농자재의 사용자와 업계, 정부 관계자가 모두 모여 의견을 나눴다는 점이 뜻깊었다”면서 “양 측이 모두 이상향을 가지고 있지만 현실적인 부분이 반영된 제도가 추진되기를 원하는 만큼 사용자와 소비자, 생산자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제도로 개선되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