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말이 한때는 건강한 식생활의 대명사로 유행이었다. ‘몸과 흙은 둘이 아니다’는 이 말처럼, 우리는 원래 내가 사는 동네 주변 땅에서 자란 농산물을 먹으며 살아왔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오늘날 우리가 늘상 먹는 음식이 수천 km 떨어진 낮선 땅에서 재배된 농산물이 올라온다.
이런 식생활 속에서, 우리 몸과 흙은 점점 멀어지고 있는데, 불편한 진실은 20~30년 전보다 더 잘 먹고 풍요로움 속에 살고는 있지만 질병은 더 늘어났다는 것이다. 들어보지도 못 했던 정체를 알 수 없는 생소한 질병, 환경호르몬, 미세먼지 그리고 기후위기 문제가 심각해지는데 이 모든 문제의 근본에는 “석유”라는 연결고리를 발견하게 된다. 농사, 축산, 난방, 수확, 운송, 가공 등 모든 산업 전 분야에 석유 없이는 돌아갈 수가 없다. 특히 농업은 에너지 집약산업이기 때문에 국제 유가가 오르면 농산물 가격도 같이 올라가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가 않은 이유이다.
미생물을 이용하여 생산하는 알코올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미래 에너지원이 될 수 있어
유한한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에 대한 연구는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왔다. 그중 하나가 미생물을 이용한 알코올 생산인데 옥수수 1톤당 생산되는 에탄올 양은 약 480리터이며 2022년 기준, 미국에서 60%, 브라질에서 30%를 생산한다. 에탄올은 휘발유보다 열량이 낮아 연비는 떨어지지만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30% 이상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어 친환경 에너지로 주목 받고 있다. 이미 브라질에서는 사탕수수에서 만든 알코올을 휘발유와 섞은 “가소홀(gasohol)”을 자동차 연료로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옥수수나 사탕수수를 미생물을 이용하여 생산하는 알코올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미래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
대학원 석사 과정일 때 대체 에너지 연구에 참여를 했었는데, 나무를 전처리하여 미생물에 먹이로 공급하여 알코올을 생산하는 프로젝트였다. 나무는 주로 섬유소(Cellulose)라는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섬유소는 포도당이 길게 일렬로 사슬처럼 이어진 구조이다. 길게 이어진 섬유소를 중간 중간 끊어내어 역할은 곰팡이가 잘하기 때문에 포도당을 얻기 위해 곰팡이(균류)를 사용한다. 곰팡이가 섬유소를 잘게 쪼개어 포도당을 얻으면 그 다음에는 효모(yeast)를 투입해서 최종적으로 알코올을 생산한다. 정리하면 나무(섬유소) → 곰팡이 → 포도당 → 효모 → 알코올 이렇게 간단한 원리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서로 다른 2종 미생물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비위를 잘 맞추어주어야 하는데 곰팡이가 관여하는 당화(糖化) 과정과 효모가 주관하는 발효(醱酵) 과정은 따로 진행이 되어야 한다.
곰팡이와 효모는 성격이 달라 꼭 고양이와 개를 한 공간에서 키우는 것처럼 각자의 특성에 맞는 조건을 조율하는 것이 쉽지 않다. 서로가 원하는 온도, 산소, pH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비용과 시간을 절감하려고 고안한 것이 바로 동시당화발효(SSF, Simultaneous Saccharification and Fermentation)라는 공정으로 좀 어색하긴 하지만 곰팡이와 효모를 한꺼번에 넣고 동시에 반응시키는 방식인데, 처음엔 ‘과연 가능할까?’ 싶었지만 시도와 실패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알코올 생산 수율이 늘어나긴 했다.
곰팡이는 공기를 좋아하는 호기성 미생물이고, 효모는 산소 없는 환경을 좋아하는 혐기성 미생물이었기 때문에 이 두 녀석의 비위를 맞춰주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까다로운 두 녀석을 어르고 달래며 실험을 거듭하여 결국에는 적응 가능한 미생물 균주로 순화시키고 선발하여, 최적 조건을 찾아낸 결과, 당화와 발효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현해냈다.
그때 느꼈던 건 중 하나가 조금 엉뚱해 보여도 새로운 시도에 대한 두려움은 절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인데 그 당시에도 개별 미생물 하나에만 집중하다보면 큰 그림을 놓치기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미생물을 전체 그림 중 하나의 구성요소로 보고 전체를 보려고 자꾸 애를 쓰다보면 숲 전체가 보이고 길이 열린다는 것을 배운 경험이었는데 요즘 우리 농업인들은 미생물 하나에만 너무 집중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현미경 너머 눈에 보이는 ‘균 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미생물이 어떤 일을 하느냐는 점
요즘 농사짓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수익도 예전 같지 않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다 보니 농업기술센터에서 공급하는 유용미생물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유용미생물의 밀도(CFU, colony forming unit)에만 집착하게 되면, 정작 중요한 부분을 놓칠 수 있다. 미생물은 단순히 살아 있는 숫자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2차 대사산물, 예를 들어 항생물질, 식물생장촉진물질(PGRs), 유기산, 항바이러스성 화합물 등이 실제로 작물 생장과 병해 억제에 효과를 주는 핵심 요소다. 현미경 너머 눈에 보이는 ‘균 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미생물이 어떤 일을 하느냐는 점이다. 이제는 단순히 “균이 많다”는 기준에서 벗어나, 어떤 미생물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유익한 물질을 만들어내는지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 각지에서 미생물 강의 요청을 받다 보면, 많은 농민들과 직접 소통하고 강의 중에는 늘 정확한 미생물의 효능과 실제 농업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려고 하는데 아직까지도 미생물에 대해 충분한 이해 없이 사용하거나, ‘그냥 좋다더라’는 말에 의존해 주먹구구식으로 적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결국, 미생물도 생물이기 때문에 제대로 알고 다뤄야 미생물의 효과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미생물”, 작고 보이지는 않지만 그 가능성은 상상 이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