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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어드는 내수시장 농자재산업 대책 없어

FTA, “수출만이 살길”…아쉬운 산업육성 정책

 
우리나라의 FTA(자유무역협정)는 2004년 4월 칠레에 이어 싱가포르, EFTA, ASEAN, 인도 등 16개국과의 FTA가 발효됐다. 지난 7월 1일에는 한-EU, 8월 1일 한-페루 FTA가 각각 발효되면서 총 44개국으로 늘어났다. 한-미 FTA는 체결됐지만 비준을 위한 양국 내 절차가 진행 중이다. 또 현재 호주, 뉴질랜드, 터키, 콜롬비아, 캐나다, GCC, 멕시코 등 12개국과 협상 중에 있다. 일본과 중국 등 17개국과는 협상준비 국가로 최근 중국과의 FTA 추진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농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농업분야는 FTA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산업으로 분류되면서 다양한 피해대책 방안이 제시되고 있지만 여전히 피해규모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농업분야 피해대책도 농업인들이 수용하기에 크게 부족하다는 지적받고 있다.

실제 한-미FTA의 피해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5일 과천 기자실에서 ‘한-미 FTA 경제적 효과 재분석’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미 FTA가 발효돼 15년동안 영향을 미칠 누적 농업생산감소액이 당초 추정치보다 2조2000억원 늘어난 12조2252억원이 될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2007년에 추정할 당시보다 농산물 가격이 상승하고 가축 사육마리수가 급격하게 증가한 것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피해규모를 보고 적어도 4조~5조원의 추가 피해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농민단체들도 기재부의 재분석에는 가공분야가 산정되지 않는 등 다양한 변수가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미 FTA가 발표되면 피해규모 이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는 만큼 실질적 선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처럼 농업분야에 대한 피해대책 마련은 국민이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화두로 떠오르고 있지만 농업의 생산성을 향상시켜 우리 농업의 발전을 이끌어 내는데 일익을 담당해온 농자재산업에 대한 FTA 관련대책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FTA가 농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면 당연히 농자재산업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농업 위축이 곧바로 농자재시장의 위축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한-미FTA, 농업피해 12조2000억
FTA는 이미 44개국과 발효되고 미국과 FTA는 비준만을 남겨두고 있다. 여기다 중국과 FTA도 결국 체결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협상중인 12개국과 협상을 준비 중인 17개국 대부분도 우리나라가 농업분야에서 만큼은 비교 열위에 놓여 있다. 농민단체들이 FTA를 반대하는 이유도 분명하다. 농업분야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최근 기획재정부 주관으로 농촌경제연구원 등 10여개 연구단체가 분석한 ‘한-미FTA 경제적 효과 재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농수산업 부문은 15년간 연평균 8445억원(농업 8150억원, 수산업 295억원) 수준의 생산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농업부문만 따지면 12조2000억원 규모의 피해가 예상되는 것이다. 이중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축산업은 15년간 연평균 4866억원, 과수 2411억원, 채소·특작 655억원, 곡물 218억원 등으로 분석됐다. 이 같은 분석은 지난 2007년의 농업생산감소액 예상치 10조470억원보다 2조7000억원이 증가한 것이다.

더욱이 지난 7월 1일 한-EU FTA가 발효된 후 한 달 만에 EU산 농·축산물이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안방 식탁에 대한 점유율을 크게 높인 것으로 나타나 농민들을 시름에 잠기게 했다.
관세청이 지난 8월 1일 발표한 ‘한-EU FTA 발효 후 한 달간의 성과분석’에 따르면 7월 냉동 돼지고기 수입량은 1만3380톤으로 지난해 7월 4243톤보다 무려 215% 증가했다. 닭·오리고기 등 가금류는 전년 동기대비 37% 늘어난 396톤에 달했고 치즈는 44% 치솟은 633톤으로 집계됐다. 와인도 30% 증가한 1323톤이 수입됐다. 반면 수산물은 27% 줄어든 379톤이 들어오는데 그쳤다.

농업에 가장 위협적인 ‘한-중 FTA’
한-중 FTA는 보다 심각한 수준이다. 한-중 FTA가 체결돼 쌀을 제외한 모든 농산물의 관세가 철폐되면 중국산 농산물 수입 증가에 따른 우리나라 농업생산감소액은 10년 후 7조원 가량 줄어들 것으로 추정됐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달 26일 코엑스에서 개최한 ‘한-중 FTA 업종별 쟁점과 대응방안’ 세미나에서 임정빈 서울대학교 교수는 ‘한-중 FTA 농업부문 대응전략’ 주제발표에서 한-중 FTA는 한-미 FTA와 한-EU FTA보다 농업에 훨씬 위협적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임 교수는 한-중 FTA가 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중국산 농산물 수입이 급증한 상태라며, 중국까지 FTA가 체결된다면 궁극적으로 우리 농산물 시장의 개방이 전면적으로 확대돼 농업부문에 상당한 충격을 줄 것으로 전망했다.

임 교수는 근거로 2010년 기준 한-중 양국간 농림수산물 무역에서 수출비중은 15%이지만 수입비중은 85%나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만큼 농림수산물 무역수지 적자규모도 1992년 10억달러에서 2010년에는 35억달러로 3배 이상 늘어났다는 것이다.

2010년 기준 무역수지 적자 역시 농산물 14억9900만달러, 임산물 11억4200만달러, 수산물 8억6500달러, 축산물 3000만달러 순으로 농림수산물 모든 분야에서도 대중국 교역 중 적자가 심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임 교수는 특히 산·관·학 공동연구 결과 한-중 FTA 체결 이후 2020년 기준 농업생산액은 쌀을 제외한 전 품목의 관세가 10년에 걸쳐 철폐된다는 전제하에 2005년의 35조원의 20% 가량인 7조원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향후 15년간 연평균 농업생산 감소액으로 추산되는 한-미 FTA의 6698억원, 한-EU FTA의 1776억원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수준이다.

여기다 우리나라는 중국에 비해 고관세로 보호되는 품목이 많고 관세 수준도 중국보다 높아 품목별 관세철폐는 농업의 상당한 피해를 초래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또 농협제주지역본부와 제주감귤연합회가 의뢰한 연구보고서에서도 2013년 한-중 FTA 발효시 향후 10년간 감귤 누적 생산감소액은 최소 1조624억원에서 최대 1조5969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모든 품목별 피해 금액을 합치면 한-중 FTA 체결에 따른 농수산업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무차별적 FTA, 부메랑으로 돌아와
정부의 무차별적인 FTA 추진이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농업 선진국들이 최근 FTA 협상 타결 요구 등 한국 시장에 대한 개방 요구를 거세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최근 동시다발적으로 FTA를 추진하면서 경쟁관계에 있는 호주, 캐나다 등 농업 선진국들이 FTA 협상 타결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특히 칠레의 경우 한-칠레 FTA 협상결과 양허에서 제외된 농산물에 대한 추가개방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와는 14, 15일 양일간 시드니에서 소규모 회의를 개최했다. 캐나다는 최근 쇠고기 WTO 분쟁이 해결되고 쇠고기 수입재개에 대해 양국이 합의를 도출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피해산업에서 요구하는 대책 마련은 도외시한 채 개방화에만 초점을 맞춰 잇따라 FTA를 추진한 결과 농업 선진국들의 개방 압력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EU에 이어 미국, 호주, 중국 등 농업 강대국과 FTA가 체결될 경우 농업분야의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부는 FTA 피해대책으로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따른 농어업인 등의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마련했다. 이 법의 주요 내용은 FTA 발효로 국내 농축수산물의 가격이 일정 기준 이하로 떨어지면 피해보전직접지불금을 지급하는 것이 골자다.
 
FTA 발효로 인해 국내 농축수산물의 해당 연도 평균가격이 기준가격 미만으로 하락하면 피해보전직접지불금을 지급하게 된다. 피해보전직접지불금을 지급받으려면 ▲FTA 발효로 인해 해당 농축수산물의 해당 연도 평균가격이 기준가격(해당 연도 직전 5년간의 평균가격 중 최고치와 최저치를 제외한 3년간 평균가격의 85%) 미만으로 하락 ▲FTA 발효로 해당 농축수산물의 해당 연도 총수입량이 기준총수입량(해당 연도 직전 5년간의 연간 총수입량 중 최고치와 최저치를 제외한 3년간의 평균총수입량)을 초과하고 FTA 상대국으로부터의 해당 연도 수입량이 기준수입량 초과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피해보전직접지불금은 농업의 경우 ‘해당 농산물의 생산면적×단위면적당 전국평균생산량×피해보전직접지불금의 지급단가(기준가격과 해당 연도 평균가격간 차액의 90%)×조정계수’ 방식으로 산정한다.

조정계수는 ‘자유무역협정 이행에 따른 농어업인등 지원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농식품부 장관이 정하고 피해보전직접지불금은 한·EU FTA 발효일로부터 10년 동안 지급된다.
그러나 농림수산식품부가 현재 347개 세부사업을 2014년까지 259개로 통폐합하는 과정에서 보조사업 20여개를 폐지하거나 융자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폐지 대상 사업에는 FTA 대책으로 내놓은 시설 현대화나 축산분뇨시설 지원과 같은 보조사업이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줄어드는 내수시장 수출로 전환해야
농업분야의 피해규모 산출과 피해대책 방안을 놓고 다양한 의견이 교환되고 있다. 농업과 가장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농자재산업에 대한 FTA 대책은 전무한 실정이다. 굳이 찾는다면 FTA와 관련한 농자재산업의 대책으로는 수출활성화를 위한 경쟁력 제고에 맞춰져 있다. 수출로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 농림수산식품부와 업계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수출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농자재산업 육성을 위한 직접적인 지원은 없다.

농업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는 농자재산업이라는 점은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지만 농업과 달리 농자재산업은 제조업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지원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제조업으로의 농자재산업은 FTA 발효가 반갑지만은 않다. 농업 생산부문의 감축은 농자재시장의 축소로 이어지고 이는 산업의 축소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줄어드는 내수시장을 수출로 전환해야 하지만 수출전망도 그리 밝지 많은 않다. 농기계, 비료, 종자, 농약, 시설원예자재 등 자재별로 다르지만 수입의존도가 높은 산업이 농자재산업이기 때문이다.

농기계의 경우 선진국이 트랙터·수확기·방제기 등 대형 농기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대형농기계의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이들 기계의 수입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다만 소형트랙터와 작업기·건조기 등에 대한 수출이 동남아·중동지역으로 늘어나고 있는 점이 고무적이다.
 
종자시장은 더 열악하다. 화훼와 사료, 약용작물 종자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채소종자도 다국적기업이 선점하고 있다. 정부가 2020년 2억달러 종자 수출을 목표로 ‘골든 시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어 성공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2억달러의 종자 수출의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의 종자수출 규모는 2300만 달러에 불과하고 이 가운데 채소종자가 2000만달러를 점유하고 있다. 채소종자에 대한 육종기술도 다국적기업으로 넘어간 상태다.

비료업계도 경쟁력이 높지는 않다. 화학비료는 요소·인광석·가리 등 원재료의 수입의존도가 높다. 대두박 등 유기질비료의 원재료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수출은 가격대비 품질경쟁력의 확보가 미흡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실제 수출실적도 미흡하다.

농약과 친환경농자재의 원제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로 인해 FTA가 체결·발효되면 상대국에서 들어오는 농약·친환경농자재 원료 및 수입완제품의 관세가 철폐돼 무관세로 수입되게 된다. 관세가 낮아지면 제품의 가격이 인하돼 소비자들은 좀 더 저렴하게 제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농업이 위축되면서 농약과 친환경농자재 시장도 그만큼 줄어들 수 있다. 줄어든 만큼의 시장을 수출로 찾아야 하지만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의 수출 활성화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시설원예자재와 축산기자재시장도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복합환경제어시설과 양약시설 등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FTA로 수입단가는 내려가 농업인의 입장에서는 저렴한 가격에 사용할 수 있지만 농업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시장이 그만큼 줄어드는 만큼 제조업으로서의 FTA는 반갑지만은 않다.

업계 합심해 육성 정책 이끌어내야
그렇다 하더라도 FTA에 대응한 농자재산업의 경쟁력은 수출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FTA에 의한 농업 생산의 위축으로 농자재의 내수시장도 위축되면서 농자재산업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농식품부도 농자재업계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다만 농업과 농민을 위한 정책을 집행하는 곳인 만큼 산업체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산업체 육성에 열쇠를 쥐고 있는 지식경제부, 중소기업청은 농업의 특수성을 들어 농자재산업 육성은 농식품부가 담당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 처럼 농자재업계는 정책에서 서자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침체된 내수시장의 한계 극복과 생존을 위해서라도 수출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다만 각 산업별로 주무부처와 함께 FTA에 대한 실익을 따지고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상황에서 농자재업계만의 수출활성화는 메아리로 그칠 공산이 크다는 것이 관련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이에 따라 농자재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과 산업을 아우르는 부서의 탄생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다가서고 있다. 그러나 수년간의 숙원이 하루아침에 이뤄지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당장은 생산업체의 융자 지원 제도 등과 같은 농자재업계 관계자 모두가 합심해 산업에 이득이 될 만한 정책을 이끌어 내는 지혜가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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