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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배 농진청 국립농업과학원 토양비료과장

흙은 식량, 물, 생물다양성의 원천

농사직설에서 흙토람까지 흙을 가꿔온 여정

예로부터 농업은 백성들에게 식량, 의류, 약품을 공급하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제조·군대·교통·통신 수단인 가축의 힘(畜力)을 제공해주었기 때문에 농자천하지대본야(農者天下至大本也)라고 하였다. 역사적으로 토지의 등급은 국가가 토지의 농업생산력을 나타내는 수준을 계층화 한 것으로 국가 운영의 재정적 기초가 되는 과세(課稅)의 기준이기도 하였다.


고려시대의 토지등급은 토양이 비옥하여 한 작물이라도 매년 재배가 가능하면 상등전(上等田)이고 척박하여 2년에 한번 재배가 가능하면 중등전이며 3년에 한번 재배가 가능하면 하등전이었다.
토지 생산성 측면에서 한마디로 고려시대에는 비료사용기술이 전혀 발전하지 못하고 자연적인 지력(地力) 회복을 기대하는 수준이었고, 상등전 1결은 중등전 2결과 동일하게 보았다.


그러나 1429년 편찬된 농사직설(農事直設)에는 똥재, 외양간거름, 녹비, 갈잎뿐 만 아니라 객토까지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조선정부는 세종 25년(1443) 전제상정소(田制詳定所)를 설치하여 14년간에 걸쳐 무려 2십만 명의 경험 많은 농부들에게 물어서 토지등급을 3등급에서 6등급으로 개정하였다.
이 토지등급과 과세기준은 약 2백년간 사용해 오다가, 토지생산력이 일정하게 향상된 효종(孝宗) 4년(1653년)에 와서 1결(結)당 면적도 토지등급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고정하였다. 이와 같은 개정의 이면에는 농사직설에 담긴 소중한 토양비옥도 증진 기술이 조선의 농업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한 결과로 보여진다.


정조대왕은 수원을 중심으로 농업개혁을 추진하였지만, 조선후기 정치의 어지러움으로 인해 흙을 주무르는 백성들을 함부로 다룬 결과 고향을 등지고 유랑민이 되어 민란을 일으키기도 하여 나라 살림은 피폐해졌다. 급기야 한반도를 합병한 일제는 전국 토지조사를 통해 수많은 토지를 강탈하면서 조선 장기통치를 위한 경제적 기반을 구축하였다.


이 시절 농토를 잃은 백성들은 만주나 하와이로 떠나 서글프게 살아갔다. 일제는 대륙침략을 목적으로 남과 북에 농업시험장을 설치하였고, 산미증산정책을 추진하면서 1920년대와 1930년대 우리나라 서남해안에 수많은 간척사업도 추진하였다. 하지만 새로이 생겨난 간척농지의 분배도 일본인이 우선이었다. 1936년 시작된 토성조사사업은 정리되지 못한 채 해방을 맞이했고 6.25동란을 거친 다음에서야 도별 토성조사보고서가 완성되었다.


통일벼의 쌀 자급 달성…다수확 비료사용기술로 완성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다음 농지개혁법 시행으로 소작농(小作農)들이 자작농(自作農)으로 전환되었다. 다소 경제력이 생긴 자작농들은 자식들의 교육에 온힘을 쏟았다. 이때 길러진 수많은 인재들은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로 파견되기도 하면서 대한민국 발전의 역군이 되었다. 1961년 충주비료공장 건설과 더불어 1963년 농촌진흥청을 중심으로 UN원조의 토양비옥도 증진사업이 시작되었고 1964년 토양조사사업이 시작된 결과 미곡의 다수확 비료사용기술도 개발되었고, 전국 1:50,000축척의 토양도가 완성되었다. 이와 더불어 116명의 토양비료연구자도 길러졌고, 이를 토대로 1968년 한국토양비료학회도 탄생되었다.


적지적작(適地適作) 재배 기술과 다수확 비료사용기술은 통일벼와 만나 1977년 우리 역사상 최초로 쌀 자급목표를 달성하게 하였다. 쌀 자급목표 달성은 온 국민들에게‘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이러한 자신감은 훗날 88 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의 성공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생각된다.


1997년 11월 IMF외환위기로 수많은 기업이 도산하였다. 농촌진흥청은 국가 경제위기에 청년 일자리 창출과 그간의 토양지도구축 사업결과의 간편한 이용체계 구축을 위해 전자토양지도 사업을 시작하였다. 이 사업은 초창기 연간 500여 명의 청년을 고용하여 추진되었고, 2007년 한국토양전자정보시스템이 구축되었다. 이 시스템은 전국단위로 1:5,000 축척의 전자토양도를 구축한 세계 최초의 성과이며, 진화를 거듭하면서 2011년 흙토람(soil.rda.go.kr)으로 명명되었다. 세계 토양학자들도 부러워하는 우리의 흙토람 정보는 농업뿐만 아니라 환경, 수리, 수문, 토목, 건축 등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한편 광화문 침수사태나 우면산 산사태와 같은 재난을 더 이상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토양정보를 한층 다양하게 활용해야 한다.


흙토람 등 정보활용…지속가능한 토양보전의 길
흙은 정적(靜的)이나 흙 위에서 동적(動的)인 비료는 농작물의 생산성은 물론 온실가스인 아산화질소의 배출량과 물의 부영양화 원인물질인 질소와 인의 배출량과도 직결된다. 지속가능하게 토양환경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정보 활용이 중요하다.


가령, 흙토람의 비료사용처방서는 직접지불제, 친환경농산물인증제에서 농가의 친환경 토양관리 증명서로 활용되고 있다. 2015년 7월 흙토람의 비료사용처방서는 농산물품질관리원에 전자문서로 제공할 수 있게 되어 농가의 적절한 비료사용을 유도하는 한편, 매년 80여억 원에 달하는 종이문서의 발급과 제출 비용을 절감해주고 있다.


흙에 대한 중요성을 세종대왕께서는 농사직설에 담아 널리 알리셨고, 요즘은 흙토람을 통해 소통과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흙은 예나 지금이나 물, 공기, 에너지, 생물 등을 포용하는 어머니와 같은 소중한 자연자원이다.


농사직설이 발행된 지 586년이 되는 올해는 국제연합(UN)이 ‘세계 흙의 해’로 선포한 해이자, 대한민국 흙의 날도 법제화된 해라서 매우 뜻이 깊다. 소통과 협력의 핵심은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한 SNS(Social Network Service)이다.


따라서, 흙토람이 가진 정보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마음으로 다양한 정보들과 만나 현명하게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흙을 잘 알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흙을 잘 알려하지 않고 함부로 다루다 보면, 광화문 침수사태나 우면산 사태와 같은 재난이 재발될 수 있다. 반면에 흙을 소중히 다루려는 마음으로 흙을 잘 살피고 가꾸어 갈 때, 흙은 우리에게 식량, 물, 생물다양성과 같은 천혜의 선물을 지속적으로 안겨줄 것이다. 흙이 주는 재난과 혜택은 우리의 움직임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가 흙을 소중히 가꾸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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