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합지중(烏合之衆)이란 말이 있다. 까마귀는 많이 모여 있어도 지도자가 없이, 단순히 떼를 지어 있다는 말이다. 떼를 지어는 있으되 어딘지 조직적이지 못할 경우, 어느 정도 내부 질서가 있어도 힘이 없는 것을 가르킨다. 오합지졸(烏合之卒)도 비슷한 의미로 사용한다. 그런데 까마귀의 비조직성과 달리 좋은 성격도 있어 조금은 억울하겠다. 반포지효(反哺之孝)라는 고사성어의 주체가 까마귀이기 때문이다. 흑백논리에 젖어 있는 우리의 경우 백로의 하얀 색과 까마귀의 검은 색을 대비하여 까마귀를 비하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이나 티벳 등에서는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나라마다 새에게 부여한 의미가 다름의 결과이다. 오합지중이란 말을 떠올린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최근 농자재에 관련된 절박한 두가지 상황 때문이다. 하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농자재 산업에 대한 불공정거래 판정과 해당 기업들에 대한 과징금의 부과이다. 이를 바라보는 해당기업들과 대응을 염려하는 주변 사람들의 마음속에 국내 농자재기업들은 오합지졸인가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다른 하나는 흩어져 있는 농자재산업을 아우르는 조직과 침체된 국내 농자재 시장의 문제를 극복하는데 필요한 강력한 집단의식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생각에서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의 현실을 보면서 전체 농자재 산업과 기업들은 오합지졸 상황이 아닌가 여겨진다. 자유경쟁시장은 마치 오합지중 상태의 수요자와 공급자를 전제한다. 누구 한사람의 힘에 의해 시장에서의 가격과 수급물량이 좌우되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유, 자유, 영리라는 기본적인 충족요건 속에서 서로 경쟁을 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완전경쟁시장이다. 모든 자원과 정보의 이동, 소유에 차별화가 있어서는 안된다. 극단적, 이상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러한 완전경쟁시장을 우리의 현실인양 보고 있다. 그것은 이상일 뿐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을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특히 시장개방과 함께 다국적 기업들의 공격적인 시장 지배를 보면, 자유경쟁시장이 있다고 믿는 것은 어린아이가 화성에, 별나라에 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나 진배없는데도 그렇다. 일반 시장, 스마트폰이나 자동차 등과 같은 경우에는 생산자가 가격을 결정하고 생산물을 시장에 내놓는다. 실제 수요자들이 시장에서 가격을 결정하는 데 많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다. 통신료가 비싸다고 아우성이지만 해당 기업들은 여러 이유를 들어 수요자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국내 농자재시장과 농자재의 가격결정구조는 조금 다르다. 대부분의 농자재는 오랫동안 농업정책의 대상이 되어왔다. 따라서 농자재가격을 공급자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 이제는 수요자로서 농협중앙회가 절대적인 시장지배력을 바탕으로 농자재가격의 결정과 변화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일반 시장과 달리 농자재시장에서 농자재 생산자는 오합지졸의 상황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농자재 기업들이 세계적인 굴지의 농자재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내 오합지졸 상황을 즐겁게 바라보는 자들은 다국적 기업들이다. 마치 학수고대(鶴首苦待)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포지효(反哺之孝)와도 같이 결국 국내 기업들은 열심히 만들고 닦아온 국내시장을 외국기업에 넘기는 효도를 할 가능성이 많다. 안타깝다. 종자시장에 이어 농기계시장, 농약시장 등도 비슷한 상황으로 몰릴 것이 염려된다. 물론 이런 상황을 나쁘다고만 보지 않는다. 자극을 받고 성장하면 좋다. 하지만 지금 우리 농자재 기업들은 국제 메이저와 경쟁하기에는 여러 가지 부족하다. 준비할 시간이, 투자가 필요하다. Mancur Olson 교수는 집단이론을 설명함에 있어서 집단 내 개인들이 집단의 목적을 달성하게 되면 자신들도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합리적이며 이기적이라고 본다. 하지만 그 집단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집단 내 개인들이 열심히 노력한다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생각과 행동이 다르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물론 어떠한 강제나 방법들이 있다면 모르되 자유로운 상황에서 행동하게 만들면 결코 집단을 위해 행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이야기이다. 제한적인 요소가 결국 집단행동을 유인하고 강화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농자재 산업과 그들의 대표조직들을 보면 Olson 교수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농자재산업이라고는 하나 실은 오합지졸의 상황에서 자신들만 생각하고 있는 꼴이다. 농자재산업 내 농자재의 종류와 각 세부산업을 대변하는 조직들이 적지 않다. 비료협회, 작물보호협회, 농기계협동조합, 유기질비료협동조합 등. 각각의 대표조직들은 회원사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회원들은 이러한 목표달성을 위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그러나 농자재란 큰 범위에서 볼 때 공동의 목표달성을 위한 협조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농업을 지지하는 산업군으로서 큰 발전의 틀을 갖고 있어야 정책이든 해외수출이든 종합적인 접근과 책략을 세울 수 있는데 아직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오랫동안 지적해 왔음에도 그러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조직문제에서도 농자재 산업은 역시 오합지졸이다. 세계무역의 자유화가 깊이나 범위에서 심화, 확장되고 있는 상황 하에서 오합지중이 오래되면 당연히 고성낙일(孤城落日), 점점 세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의 농자재산업, 기업들의 힘이 약해지면 쇠퇴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세분화된 농자재 개별 산업의 기업들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농자재산업도 시장에서, 그리고 조직들의 협력에서 모두 오합지졸이다. 국내 농자재기업들에게는 서서히 해가 지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다국적 기업들에게는 해가 뜨는 상황이다. 따라서 국내 농자재산업과 기업들은 그냥 낙조를 바라만 볼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살릴 것인지 빨리 결정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스스로 이 길을 재촉하고 있지는 않은지 백척간두 위에서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전략을 만들어 실행해야 한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라. 하지만 멀리가려면 함께 가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