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기계 내수시장이 심각한 정체를 보이면서 농기계산업의 성장동력을 새롭게 발굴해야 한다는 업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융자지원을 기준으로 한 지난해 농기계 융자판매실적은 7797억원으로 2011년 8785억원에 비해 11.2%가 감소했다. 공급수량을 보면 6만5284대였던 융자공급물량이 5만5538대로 15%가 줄어 심각한 현실을 보여준다.
사실 농기계 내수시장의 침체는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1997년 1조 2천억원을 정점으로 정체되어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농기계 내수시장이 앞으로 1조원대 이하의 정체 단계에 진입한다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 원인은 농협 농기계은행사업 등 정부의 농기계 공동이용 촉진 정책의 영향이 크다. 또 가격인상억제 정책과 농가소득의 경영악화, 수도작 재배면적 축소 등 농업의 전반적인 침체도 농기계 시장이 어려움을 겪는 원인이 되고 있다.
농기계 수출, 농기계산업 도약의 창구 될까
그러나 한국의 농기계산업의 정체가 전혀 탈출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농기계 수출 증대가 농기계산업의 희망이 되고 있다. 지난해 농기계 수출은 3분기 시점에서 5억2073만 달러를 기록해 전년 동기의 4억1337만 달러보다 26%가 신장된 성과를 보였다. 아직 4분기 집계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시장에서는 8억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7억달러 수출 목표를 초과달성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업계는 힘을 얻고 있다. 농기계 수출이 한국 농기계산업의 도약의 창구가 될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농기계 수출의 증가는 세계 곡물 재배량의 확대에 따라 농기계 수요 증가가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중소형 농기계시장에 있어 강자인 일본이 주춤하는 틈을 타 한국의 농기계 기업이 선전하고 있는 모습으로도 읽혀진다.
이처럼 농기계산업의 성장동력을 해외수출에서 찾아야 한다는 업계의 각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한국농기계공업협동조합은 지난 11일 대전 유성호텔에서 ‘농기계산업발전 혁신연구회 세미나’를 열고 국내외 산업동향과 중장기 R&D 기획과제와 함께 수출확대를 위한 정책 제언을 모으는 자리를 가졌다.
한국 농기계는 품질·가격에서 어중간한 위치
세미나의 주제발표에서 김영주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박사는 중국, 브라질, 러시아 등 해외 농기기계 시장과 기종별 현황을 분석하고 국내외 시장과 기술 분석을 통해 수출주도형 농기계 산업의 육성전략을 소개했다.
전문가들은 해외 농기계 시장이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일 것을 예상하고 있다. 특히 아시아 지역의 성장세가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하고 하고 있다. 문제는 해외시장에서 한국 농기계의 위치가 품질이나 가격 면에서 어중간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점이다. 중국, 인도 등 신흥국의 추격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품질, 브랜드에 있어서는 선진국과의 격차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
개발도상국 농기계시장, 선점해야 미래 보인다
이런 가운데 김 박사는 중국과 인도, 브라질과 러시아 시장을 눈여겨보고 한국의 진출을 조심스레 타진했다. 중국의 농기계 시장규모는 2012년 기준 약 212억불로 미국, EU와 함께 세계 3대 농기계 시장으로 급부상했다. 중국 정부의 농업기계화율 촉진정책이 중국내 농기계 수요 급증을 견인하고 있다.(2020년 70% 목표) 중앙정부의 30% 보조와 지방정부의 10% 추가 보조로 인해 연평균 30%의 속도로 중대형 트랙터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인도는 세계 2위의 트랙터 제조국이며 70억불의 시장규모로 연 5%의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또 농민들의 구매력 미비로 고품질 농기계보다 저가의 초기 농기계에 대한 수요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상황이다.
브라질과 러시아는 농기계 수입 실적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브라질은 세계 2위의 콩 생산국으로 이를 수확하기 위한 트랙터의 수요가 크고 2008년 4억4000만원 농기계 수입 실적을 나타냈다.
러시아는 알타이 지방 정부가 농업 기계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고 2008년 농기계 수입이 3억5000만원에 육박했다.
IT 및 자동차 강국 산업기반 적극활용 필요
김 박사는 국내 농기계산업의 강점으로 ▲선진국 대비 가격경쟁력 우위(일본대비 약 25%) ▲IT 및 자동차 강국 산업기반 보유 ▲IT 융복합화 기반 확보 ▲자동차, 기계산업 지원 인프라 보유 ▲정부, 지자체 및 업계의 강력한 육성 의지 등을 들었다.
해외시장의 변화도 적지 않은 기회요인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했다. 최근 세계적인 곡물가 급등이 농기계산업의 호재로 작용하고 있으며 중국의 WTO 가입으로 시장이 확대되는 것도 기회요인으로 분석했다.
시장개방 및 글로벌 소싱의 확대, 미국·중국 주도의 세계경제 회복세, 대중소 기업간의 협력유대도 기회요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국내 농기계산업은 ▲품질 및 신뢰도 미흡과 저가의존 ▲기술개발 인력과 자금의 취약성 ▲내수에 의존하면서도 내수가 협소한 산업구조 등의 약점을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핵심부품 등 원천기술의 해외의존도가 높은 것도 치명적 약점으로 꼽았다. 이와 함께 국제 판매망 취약과 지식산업화 미흡도 국내 농기계산업을 수출 주도형으로 육성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문제다.
정부의 수출전략화 집중지원 시급
또한 해외 농기계시장에서 중국, 인도 등 개발도상국의 부상이 한국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기술인력 수급 불안, 취약한 산업구조, 해외 선진업체 국내진출 및 시장잠식, 선진국과의 기술격차 확대 가능성도 적잖은 위협요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 박사는 한국 농기계산업이 수출주도형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기술 트렌드를 고려한 전략제품을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글로벌 농기계 제조의 거점을 구축하고 지원기반을 확충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R&D, 품질혁신을 통한 제품의 고부가가치화도 충족돼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대중소 기업간 클러스터 형성 및 상생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정부의 수출전략화 집중지원을 통해 업계의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노력도 필요하다. 선진국-개도국간 틈새시장 선점과 원천기술의 경쟁력 확보, 자동차·건설기계 산업간 연계 및 IT 등 첨단기술과의 융복합화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곡물가 상승세 등 농기계 수요증가 요인 확대
김학태 동양물산기업기업 해외영업본부장은 ▲세계적인 곡물가격 상승세 ▲곡물 생산성 개선 노력 ▲농업인구의 고령화 ▲신흥국의 경제성장에 따른 구매력 증대가 곡물 수출국의 농가소득 증대와 농업 기계화 가속화로 이어져 지속적인 농기계 수요 증가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전세계 트랙터 시장 규모가 2019년까지 1.6배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고 특히 중국, 인도 등 개발도상국의 비중이 증가할 것이라고 시장을 분석했다. 김 본부장은 세계 주요 농기계 업체 존디어(37% 206억3100만달러), CNH(20% 115억2800만달러), AGCO(12.4%, 68억9600만달러), 구보다(12% 66억4400만달러) 등 탑(top)4의 점유율이 82%, 매출총액이 556억7500달러를 차지하는 성공 요인을 생산기지의 다변화에서 찾았다.
존디어는 미국, 멕시코, 유럽, 브라질, 인도, 중국 등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고 CHN은 미국, 유럽, 터키, 우즈벡, 파키스탄, 인도, 브라질, 중국, 러시아 등으로 생산기지의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동일제품군 이원화 전략 눈여겨봐야
또 글로벌 업체의 성공요인은 현지화된 제품이며 동일 제품군의 이원화 전략으로 미국과 EU 그리고 개발도상국에게 같은 기능의 각기 다른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농기계에 있어서도 “현지 고객의 니드에 최적화된 제품을 개발하는 것”을 필수 마케팅 요소로 꼽았다.
이와 함께 292억달러의 자산규모를 보유하고 있는 존디어 파이낸셜, 185억달러 자산규모의 CHN 캐피탈, 네덜란드 Rabobank와 합작한 AGCO 파이낸스 등 농기계기업의 자금 조달력이 필수적인 요소가 되고 있는 현실도 짚었다.
이와 함께 M&A를 통한 제조와 판매의 경쟁력 강화가 글로벌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요소가 되고 있다. 이는 CNH, AGCO 등에서 공통적인 전략으로 구사하고 있다.
구보다의 태국 현지화 성공 핵심요인은 서비스
김 본부장은 2010년 태국 내수 트랙터 판매수량에서 1만5280대로 매출 1위를 기록하고 특히 50마력 이하 트랙터에서 78%의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구보다(SIAM KUBOTA)를 현지화 성공사례로 소개했다. 구보다의 태국 내 성공요인을 공격적인 마케팅과 시장에 최적화된 제품 공급에서 찾았다. 또한 제품 인도 교육, 정기적 순회점검, 광범위한 부품 공급망, 고객센터 운영 등 철저한 서비스와 자회사를 통한 리스 프로그램, 자사제품 중고 매입 및 재판매업 등으로 소비자의 요구를 다각적으로 만족시키고 있다.
김 본부장은 한국 농기계 수출 확대를 위한 핵심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현재 한국 시장 위주 제품에서 탈피해 현지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고 이에 맞는 현지 생산체계를 구축해 현지에 맞는 제품을 생산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수동적인 판매방식이 아닌 직접영업 형태를 도입하거나 O.E.M 공급을 통한 글로벌 회사의 유통망을 활용하는 방법도 소개했다. 이와 함께 농기계 위주의 제품 포트폴리오에서 탈피하고 제품을 확대해 농업과 건설 분야 등 경제 상황과 지역적 변동성을 상호 흡수할 수 있는 방법도 모색했다. 또 적극적인 파이낸싱 도입과 생산기지 다변화를 통한 원가경쟁력 확보 등이 수출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학진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바이오시스템·소재학부 교수는 친환경 고성능 동력시스템, 고효율변속·부하감지 제어시스템 등 국내외 연구동향을 소개했다. 또 IT기술을 적용한 지능화·자동화 기술과 환경친화적 고효율 농업을 위한 정밀농업 기계기술의 발전, 로봇기술을 이용한 인공지능형 무인작업 연구가 활발히 전개될 것을 전망했다. 농기계산업에 접목되고 있는 R&D 동향을 통해 미래 친환경 고성능 농업기계와 미래 지능형 농용로봇의 출현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