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잡을 수 없이 곤두박질치던 우리 농업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지난 5월 9일 치러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농업을 직접 챙기겠노라 선언한 문재인 후보가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선됐다. 보궐선거인 만큼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인수위원회도 없이 10일부터 바로 공약 실천을 향한 첫 발을 뗐다.
본지에서는 농어업특별위원회를 통해 농민단체와 시민단체의 의견을 수렴한다는 ‘문재인의 농어업·농어촌 7대 정책’ 중 핵심 공약을 뽑아 차후 문재인 시대 농업의 변화를 살펴본다.
다원적 기능 강조,
경자유전의 법칙 재확립
역대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농업을 단순 산업으로만 규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대 정부에서 개방화 시대 경쟁을 중시하고 규모화와 집약적 농업을 강조한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공익형 직불제 확대 개편 공약이 뒷받침 한다. 공익형 직불제란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산업에 지원을 확대한다는 뜻으로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반영해 기존 소득보전 직불제를 공익형 직불제로 개편하겠다는 뜻이다. 농업예산을 편성할 때 직불제 비중을 높여나가겠다는 공약도 포함된다. 이는 가치를 중시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철학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러나 다원적 기능은 수치로 환산하기 어려운 가치의 개념인 만큼 구체적 실천 방안과 그에 따르는 예산집행이 정책성패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자유전의 법칙을 골자로 하는 농지법개정 공약도 실현된다면 농업에 적잖은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경자유전의 법칙은 도시민의 투기적 농지소유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농민만이 농지를 소유하도록 규정한다. 하지만 1996년부터 도시민도 농지를 소유할 수 있게 되면서 도시민 소유의 농지를 임대해 농사를 짓는 임대농의 수가 상당한 실정이다. 때문에 문 대통령은 농민의 권익 보장을 위해 경자유전의 법칙 재확립 공약을 들고 나온 것으로 해석되며, 이를 농지법 개정으로 풀겠다는 의지다. 다만 농지법 개정을 두고 이해 당사자간의 의견 조율이 원활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법 개정이 개인의 재산권에도 밀접한 관계가 있어 농업의 토대가 되는 농지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갈지가 새 정부의 큰 숙제다.
통일 대비 식량 정책 수립·쌀생산조정제·
쌀 값 하락방지 등 변화전망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크게 줄어든 대북 쌀 지원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180도 바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시절 농민단체 대표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과잉 생산된 쌀 소비 문제를 두고 “대북 인도적 쌀 지원은 농가소득을 안정시키면서 쌀값 폭락을 막고 남북 관계도 개선하는 1석 3조, 4조의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기조는 7대 공약에도 반영돼 대북 쌀 지원 등 통일대비 식량정책을 수립할 계획이다.
이와 더불어 쌀 생산조정제로 생산과잉을 겪고 있는 쌀 문제도 해결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우면서 쌀 문제에 대한 의지가 역대 어느 정부보다 강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생산조정제는 쌀의 수급불균형을 해소하는 취지로 일종의 쌀 공급량 감소를 골자로 하고 있으며, 박근혜 정부에서 충분한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실패로 돌아간 사업이다. 결국 박근혜정부는 쌀값 하락으로 변동직불금 한도 내 지급 문제와 정부재고미의 관리 비용 증가로 당시 생산조정제 예산으로 요구됐던 900억원을 초과하는 예산이 투입되는 수업료만을 치렀다.
새 정부는 이러한 수업료를 치르는 대신 미리 적은 예산을 투입해 쌀값 하락을 방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쌀 목표가격을 물가 상승률을 반영해 인상함으로써 수 십년간 제자리걸음이었던 쌀농사 경영에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전망된다.
생산자 조직화로 농산물 유통체계 개선
문재인 대통령의 농업 공약 중 또 하나 눈여겨 봐야할 점은 우리나라 농업의 고질적 문제인 유통체계 개선을 위한 생산자 조직화이다.
생산자 조직화는 농협의 개혁과도 맞닿아 있다. 새 정부는 우선 생산자조직 중심의 생산조정, 수급조정, 가격안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와 더불어 생산자조직의 계약재배·조합공동사업법인·연합조직의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며, 품목별 협동조합 육성·광역단위 품목조직·품목별 전국 연합조직도 육성할 방침이다.
이와 같은 정책은 농업유통에 있어서는 상당히 비중 있게 다뤄야 하는 문제로 산지조직화가 생산자의 교섭력과 농가소득 등 농민의 이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또한 조직화된 산지가 안정적인 물량조달, 품질향상 등과 연관되기 때문에 농업 유통에서 풀어야할 가장 중요한 화두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의 이 같은 공약은 모두 산지 조직화를 목표로 하는 밑그림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여기에 농가 조직화에 미진한 농협에 대한 역할 주문도 병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농어민 산재보험 등 복지 확대와 여성 농어업인의 권리와 복지 증진 등 다양한 공약을 제시해 문재인 정부가 농업의 새로운 판을 구축할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