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조류인플루엔자)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백신을 처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백신 사용이 오히려 비용만 증가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어, 이번 AI 사태가 백신사용에 대한 찬반 논쟁으로 불붙을 것으로 보인다.
전북 군산 종계장 AI 발원지 추정
AI는 6월 9일 기준 현재 12건이 고병원성 H5N8형으로 확진됐다. 최초 신고처인 제주도를 시작으로 전북 군산, 경기 파주, 부산 기장, 경남 양산, 울산 등지에서 모두 12농가의 의심신고가 고병원성 AI로 확진된 것이다. 정부와 검역당국에서는 AI 전파의 출발 기점을 전북 군산의 종계장으로 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전북 군산 소재의 종계장에서 제주도 유통 상인을 거쳐 제주 재래시장에 나온 오골계가 감염 원인으로 추정된다.
정부에서는 AI 감염의 출발점이 된 농가에 대해 다각적인 역학조사를 실시해 추후 감염 예상 경로를 예의 주시하고 있으나, 성계(큰닭)뿐만 아니라 병아리 등도 반출된 것으로 조사되면서 추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만, 지금까지 AI 확진 결과가 군산 종계장과의 연관관계가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있어, 군산농장이 확산 기점일 가능성이 큰 상황. 전문가들은 역학조사가 어느 정도 이뤄졌고, 사태 수습에 대한 정부의지가 강한만큼 AI가 생각보다 빨리 종식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따뜻한 날씨도 AI 종식 가능성을 밝게 해주고 있다. 여름철에는 비교적 바이러스의 활동이 뜸해지고, AI 특성상 대부분 겨울에 발생해 기온이 올라가는 3월 경 종식됐기 때문이다.
AI 추가발생 예의주시…
질병 상시화 가능성 대두
그러나 마음을 놓기는 이르다. 지금까지 소규모로 운영되고 있는 오골계와 토종닭 농장 등이 직격탄을 맞아 피해가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규모가 큰 산란계(알을 낳는 닭) 농장으로 번질 경우 그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런 이유 때문에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더 큰 문제는 AI의 상시화, 즉 토착화 가능성이다. 우리나라에는 2003년 AI가 처음 발생해 2~3년 주기로 반복적으로 발병하고 있다. 특히, 이번 AI와 같은 H5N8형 바이러스가 창궐했던 2014~2015년에는 무려 669일 동안 지속된 바 있다. 당시 가금류 2477만여마리가 땅에 묻혔으며, 지난겨울에도 AI로 3700만여마리를 살처분해 역대 최악의 피해를 기록하기도 했다.
AI는 구제역과 달리 백신으로 예방하지 않는다. 백신을 사용할 경우 인체에 의한 감염과 농가의 백신비용 부담, AI바이러스 변종으로 인한 실효성 문제 등이 불거지기 때문이다. 지난 수 십 년간 백신 사용에 대한 논의가 설왕설래로 그친 이유다. 이번 AI로 농축식품부가 백신 도입 카드를 꺼내들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본격적인 백신도입 논쟁이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이례적으로 참모들에게 “AI 대책이 의례적”이라고 표현하면서 방역당국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농식품부는 이에 대규모 살처분 대응에 문제가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백신 사용 추진 등을 골자로 대책을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방역대책 전면수정 불가피,
“백신도입 필요하다”
가금업계 일각에서는 백신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경남 양산에서 산란계농장을 운영하는 A씨는 “AI는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없애기는 어렵지만 이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가금류가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사육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라면서 “중국, 동남아 국가에서 가금류에 백신을 투여해 피해를 줄이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농장 사육환경 개선이 시급한 것은 스트레스를 받는 요인을 줄이면 가금류의 건강도 그만큼 개선되기 때문에 다양한 질병을 이겨내는 힘이 커진다는 것. 이는 건강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각종 질병에 강한 것과 같은 이치라는 설명이다. 또한 AI가 발생시 지역에 따라 발생 농가를 중심으로 500m 및 3km에 살처분하는 방식도 지역마다 다르기 때문에 이를 명확히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A씨는 “이번 AI에 대해 양산에서는 발생농장을 중심으로 500m이내에서 살처분을 실시하면서도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며 “살처분 기준을 명확히 해 농가의 피해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AI 사태 근본원인부터 살펴야…
“백신도입은 최후의 수단”
그러나 백신 도입 반대 의견도 만만찮다. 이들은 과거 구제역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나라 방역체계에 허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이홍재 대한양계협회장은 “지난해 우리나라에 구제역이 발생 시 물백신 논란 등으로 많은 축산농가들이 피해를 입었다”면서 “지금 농가들은 방역당국의 능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백신을 올 가을 당장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방역당국이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꼬집었다. 다만 그는 “백신 도입이 시기상조이긴 하지만 이에 대한 대비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AI 항원 뱅크와 백신접종 대비 매뉴얼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백신은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해야 한다. 아직까지 백신 도입 후 인체감염에 대한 위험성, 질병상시화 부문 등 우리가 치러야 할 비용이 더 커질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AI사태에 대해 양계산업의 근본적인 부분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견도 대두되고 있다.
김재민 농축식품유통경제연구소 실장은 “AI의 주감염 원인으로 꼽히는 철새는 주로 우리나라 서해안 벨트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면서 “농장을 철새 주변지역에서 이주시키거나 강제 유휴기간을 설정해 사전에 감염에 대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AI의 피해가 주로 산란계 농장에서 발생하는 원인은 대규모로 사육하고 있는 농장이 많기 때문”이라면서 “이들의 규모를 다운사이징하는 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