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 해남지역을 기점으로 언론의 관심이 시작된 벌집군집붕괴현상(Colony Collapse Disorder; CCD)이 더욱더 기승을 부리면서 양봉농가는 지금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해외에서 조사, 발표된 꿀벌실종의 원인은 농약 피해, 응애 피해(바이러스 전파), 세균성 질병 확대, 밀원수 부족(영양결핍) 등으로 규정되고 있다.
현재 국내 상황은 규정된 모든 문제를 갖고 있으며, 이는 자연재해라기보다는 대부분 인재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사람이 꿀벌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19년 최초 발생 된 후 전세계를 펜데믹으로 내몰았던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이제 감기처럼 종식되지 않는 주기적인 전염성질환으로 인류의 삶의 패턴을 바꾸고 있는 것처럼, 현재 양봉산업의 상황은 양봉농가를 멸종에 이르게 하는 재앙처럼, 해가 거듭될수록 그 피해가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더해 최근 안동대 식물의학과 길의준 교수가 국내 최초로 꿀벌 대상 바이롬 (Virome) 분석을 통해 기존 6종의 꿀벌 바이러스 이외에 신종 바이러스인 레이크 시나이바이러스(Lake Sinai Virus, LSV)가 국내에서 검출됐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양봉농가를 공포 속으로 더욱 내몰고 있다. 특히 다른 축종과 달리 6조원의 꿀벌의 공익적 가치는 이미 수많은 언론에서 다루어졌다.
하지만 위기에 내몰려 벼랑 끝에 선 현재의 양봉산업은 결국 그동안 부족한 대책으로 인해 꿀벌폐사를 증폭시킨 결과이다. 치료제가 없는 바이러스는 정부가 방역대책을 단기적·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체계적이며, 선제적으로 수립해야 한다.
양봉 질병 관련 전문인력 및 예산 부족
지난해 말부터 급격히 늘어난 전국적 꿀벌실종은 양봉농가의 피해는 물론 시설원예농가와 과수농가까지 그 피해가 급속도로 악화되고 실정이다. 이는 곧 식량위기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도 하다.
양봉업계 관계자인 하성섭 대표는 “양돈농가는 아프리카돼지열병(African swine fever, ASF), 양계농가는 조류독감(Avian Influenza, AI) 등의 바이러스가 매년 재발 되면서 이에 대해 정부당국은 매년 수천억의 ‘가축전염병 예산’ 투입을 통해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전국 지자체에 체계적 방역인력과 시설, 약품 등 각종 지원책이 다양한 방면에서 책정되어 양돈·양계농가를 지켜주고 있다”며 “하지만 양봉산업의 경우 지금과 같이 꿀벌실종이 시간이 갈수록 더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농업 현장과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전국 농업기술센터에 수의사, 생물학 전공자 등 양봉관련 질병 전문인력조차 전무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바이러스 방제의 기본인 양봉전용 소독제에 대한 방역비 지원금도, 바이러스 전파의 근본 원인은 꿀벌응애에 대한 방제 매뉴얼도 없어 지난해보다 꿀벌폐사의 상황은 더욱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양봉업계의 목소리다.
연간 수백억 예산 투입되는 소나무재선충 방제
연간 수백억의 예산을 투입해 솔수염하늘소 및 솔잎혹파리 등의 소나무재선충 살충제[성분명 티아클로프리드(Thiacloprid)]를 살포하고 있는 산림청조차도 꿀벌폐사의 원인에 대해 정부의 책임과 역할은 외면한체 자연재해인 온난화와 농가의 책임으로 전가하고 있다.
하지만 양봉업계 복수의 관계자는 “한마디로 무관심과 무대책이다. 지구 온난화가 주요 원인이면, 다른 국가의 꿀벌은 왜 피해가 심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하며, “꿀벌폐사는 한두 가지의 원인이 아닌 농약, 밀원수 부족(꿀벌의 영양상태 악화), 진드기 같은 외부 기생충 등 다양한 원인이 복합되어 꿀벌이 죽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산림청은 농약을 살포하는 대신에, 양봉농가의 피해와 아픔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산림청 관할지역에 긴급 예산을 편성해서 의무적으로 다양한 밀원수를 식재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양계장, 양돈장, 논, 과수원 등도 드론으로 원액 또는 희석배수가 적은(16~50배) 고독성 농약을 살포하고 있으며, 사용되는 드론전용 농약 제품수도 이미 500여개가 넘어가고 있다. 또한 살충제와 살균제, 심지어는 양돈·양계장에서 사용하는 소독제도 꿀벌의 면역체계를 약화시키고, 비행능력을 저하시키는 직접적인 원인 중 하나다. 이는 벌집군집붕괴현상이 발생한 해외 대부분의 공통된 연구결과로 유럽연합(EU)에서 2018년부터 꿀벌피해 농약사용을 금지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농약 등록시 꿀벌 독성 검사 의무화 요구
양봉업계 복수의 관계자는 “지난 1년간 폐사율 조사 등 몇 가지 서류상의 행정절차만 반복하고 있는 것이 대안이 될 수는 없다”며 “소·돼지·닭·오리 등 국내 농림축산식품부가 분류관리를 하고 있는 축종 중에 양봉농가수는 20%가 넘는데도 예산은 고작 2% 미만인 것도 문제다”라고 말했다. 이어 “꿀벌실종에 대해 꿀벌에게 치명적인 농약의 인허가를 담당하는 농촌진흥청은 농약허가시 모든 농약에 대해 꿀벌의 독성(경구, 접촉 등) 검사를 의무화 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실제 다수의 농약들에 의한 2차 오염이 꿀벌을 죽음으로 몰기도 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논벼·과수원·산림청 등에서 농약 살포 전, 양봉농가에게 사전 고지하는 것을 기본으로 전국의 벌통 속 잔류농약 검사를 통해 농약 성분·지역별 피해조사를 심층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원인을 알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봉농가는 그동안 별다른 대안없이, 고령화되고 정보에 어둡기 때문에 관행적으로 사용한 것들을 믿고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약품에 대한 아무런 감독도 하지 않은 농림축산검역본부 등 정부기관의 책임도 있다고 본다.
현재 양봉약품으로 등록된 수십 가지 제품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아직 출시하지 않은 제품을 포함해 등재된 제품도 약해 검증을 통해 문제있는 제품을 퇴출시킴과 동시에, 꿀벌의 안전성과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과대광고를 하는 업체에 대한 단속, 일부지만 개인적 이익을 위해 거래되고 있는 밀수품 등도 엄격한 기준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국가 양봉관련 전문인력 및 조직 강화 필요
피해보상에 대한 법적 근거 마련도 시급
양봉농가는 바이러스 대책 및 꿀벌에게 발생하는 부저·석고·노제마 등 각종 질병에 대한 대책을 갖고 있지 않다. 대책 마련을 위해서는 농림축산검역본부 및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양봉생태과 등 관련 기관의 전문인력과 조직체계 변경이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예를 들면, 꿀벌에 대한 응애 전문가·바이러스 전문가·영양 전문가·밀원수 전문가 등 부문별 전문인력을 대폭으로 증원하고 지속적으로 양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중장기적으로는 꿀벌의 공익적 가치에 맞는 직불금, 폐사에 대한 직접적인 피해보상을 위한 1종 법정전염병 지정, 양봉산물의 다양성을 위한 식품위생법 개정 또한 필요한 사항이다.
하성섭 대표는 “현재는 우선적으로 전염성이 빠른 ‘LSV’와 같은 신규 바이러스 유입에 대한 전국 시도 단위의 긴급 현장 조사를 통해, 발생 현황을 파악함과 동시에 이에 대한 예방책으로 코로나19 대응책과 같이 소독제 및 응애구제 예산의 확대 지원이 필요하다”며 “해외 선진국과 같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약품을 개발 또는 해외 검증된 약품의 수입, 인허가 및 국내 회사들이 약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각종 지원정책을 고려하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내성있는 농약성분의 중국산 양봉약품에 대한 전면적인 확대 조사가 상시적으로 필요하다”며 “지금까지 국내 양봉약품은 대부분 중국산 농약 제품이었고, 그래서인지 지난 2008년 첫 허가 이후 단한번도 감독기관의 검증이 없었기에 약품에 대한 내성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해외에선 발암물질로 규정된 제품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꿀벌 실종은 인재, 대책 마련할 수 있어
매년 벌통, 화분, 설탕 등의 양봉농가의 기본 필수 품목의 가격도 인상되고 있다. 양봉산업의 유지를 위해서는 정부가 ‘식량지킴이’인 양봉농가에게 농약으로 오염된 벌통교체, 화분구입비 지원, 설탕사료화 등을 통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양봉업계 복수의 관계자는 “꿀벌폐사에 대해 서도 구제역 방제 실패로 폐사된 양돈농가를 보상하는 것처럼, 양봉농가에게도 실질적 보상을 해야 한다”며 “그래야만 현재 고통받고 있는 양봉농가의 명백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몇년전 항구에서 살인개미 1마리가 발견되어 언론에서 크게 이슈화가 됐었다. 반면에 지난 2018년 생태교란종으로 지정된 ‘등검은말벌’이 상해를 통해 부산으로 들어왔을 때 초기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해 지난 20년간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결과가 나왔다. 양봉산업에서 응애 다음으로 양봉농가를 힘들게 하는 것이 말벌과의 전쟁이다.
하성섭 대표는 “언제까지 양봉농가 스스로 자기돈 내고, 방역을 해가면서 각자도생으로 이 위험한 상황을 방치할 것인가? 정부측에 묻고 싶다”며 “양봉농가에서는 매일 아침 양봉장을 갈 때마다 죽어있는 벌들을,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소중한 재산이자, 자식같은 벌들을 볼때마다 너무 답답하고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는 대한민국 3만 농가의 동일한 심정이고, 현실이다”라고 강조했다.
꿀벌의 실종은 태풍·홍수와 같은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다. 인재이기에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양봉산업은 지금 정부의 근본적인 대책이 어느 때 보다 절실한 실정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민관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시작해야만 한다. 미루면 미룰수록 꿀벌실종은 멈추지 않고 더더욱 가속화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