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지는 전국 주재기자의 취재와 농민·농자재판매점의 제보를 바탕으로 6월말 현재 전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농약 약해·약효미흡 사례를 취재조사하였다. 각 지역별로 논란이 되고있는 사례에 대하여 제품현황 및 피해현황, 농민들의 주장을 폭넓게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약해사고는 그 원인이 제품적·환경적·사용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또한 6월말 현재 제조회사와 피해농민간의 피해원인 규명이 진행되고 있는 바, 뉴스보도로 인한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조회사명·제품명·취재대상자 등을 모두 영문으로 이니셜 처리하기로 하였다. 이니셜 처리한 영문은 제조회사·제품명·취재대상자와 어떠한 관련도 없는 단순한 나열식 표기이며, 향후 약해사고에 대한 원인규명이 종료되면 재취재하여 원인과 책임·보상에 대해 다시 보도할 것을 약속드린다. - 편집자 주 -
모내기를 끝내고 분얼기를 지난 요즘, 전국의 논은 푸르름 그 자체이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는 모습에 가을의 황금들녘이 연상된다. 하지만 모든 농민들이 풍성한 가을을 꿈꾸는 것은 아니다. 하루가 다르게 시들어가는 연약한 모를 지켜보는 농민들의 마음은 이미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다. 바로 농약 약해 때문이다.
전국 곳곳에서 수도용 제초제의 약해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참 분얼하며 쑥쑥 커가야 할 시기에 누렇게 백화현황이 나타나거나, 시름시름 줄기가 쳐져있는 논이 전국 곳곳에 분포하고 있다. 비단 수도 뿐만이 아니다. 원예용 과수용 농약들도 전국 곳곳에서 약해와 약효미흡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비싼 돈을 들여가며 사용한 농약으로 오히려 작물에 해를 입은 농민들은 이미 마음에 큰 상처를 안고 있었다.
품질관리 철저한 농약, 제품자체의 결함은 드물어
약해. 농촌진흥청 농업용어사전는 “약물에 의해서 작물에 나타나는 생리 장해. 주로 식물 조직의 파괴, 식물의 증산작용·동화작용 및 호흡작용 등의 생리작용을 방해하고 억제하며, 식물의 정상적인 생육을 저해함”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농약은 농약관리법 등 관계법령에 의해 철저한 관리하에 등록 및 제조, 유통되고 있다. 농약을 등록할 때에는 ▲이화학 분야 평가(원제의 주성분에 대한 안전성 평가, 제품의 제조 처방·경시변화 및 이화학 자료 평가, 제품의 제형 및 분석방법 평가 등) ▲생물활성분야 평가(적용작물에 대한 약효·약해 성적서 평가, 농약사용 주의사항 설정 등) ▲잔류성 분야 평가(작물·토양·수중잔류 성적서 평가, 농약안전사용기준안 및 잠정 잔류허용기준 설정 등) ▲위해성 분야 평가(소비자 및 농작업자 위해성 평가, 농약의 취급제한 및 표시기준 설정, 독성 및 어독성 구분 등) 등 다양한 평가를 실시하고 재평가하여 등록한다.
때문에 농약 제품 자체의 품질 하자로 약해를 일으키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다면 왜 전국 곳곳에서 약해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사실 농약의 약해는 비단 올해만의 문제는 아니다. 크게 이슈화되지 않았을 뿐 매년 발생하고 반복되는 현상이다. 농약 약해, 왜 매년 발생하는 것일까?
강화·김포·이천 등 경기·충남 30만평에서 B제품 ‘백화현상’ 발생
수도권에서 밥맛좋은 쌀 생산으로 유명한 경기 강화군 교동면. 기자가 방문한 5월말 수도재배 농가들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A사가 판매한 수도용 제초제 B액상수화제를 사용한 한마을 17농가가 동일한 약해 피해를 당했다고 한다. 제초제 살포후 초기 백화현상이 발생하다가 회복되지 못하고 생육이 멈춰있거나 누렇게 죽어가고 있는것. 단순한 몸살증상으로 예상하고 영양제 등의 응급처방을 하였으나 큰 효과가 없다고 한다. 기자가 방문한 포장에서도 한눈에 약해증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군데군데 모가 죽어가고 있으며, 생육하는 벼의 곳곳에서 백화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B액상수화제를 판매한 C농자재마트 D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이 제품은 지난해까지 입제형태로 판매되던 제품이었다. 입제 제형시 초기 백화현상이 나타나다 시간이 흐르면서 초세가 살아나곤 했다. 올해는 액상수화제로 바뀌면서 회사에서 약해문제도 해결했다고 했는데 오히려 더 심한 것 같다. 매년 같은 약해를 겪다보니 제품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라며 제품 품질에 의혹의 시선을 보냈다.
농가들의 반응은 냉정했다. “한동네 17농가가 피해를 당했는데 무슨 변명이 필요하겠어요? 환경? 사용자? 다 핑계일 뿐입니다. 지난해에도 같은 피해를 입었는데 올해 같은 제품을 사용한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겠죠? 회사는 제품의 하자를 인정하고 우리 농민들이 입은 피해를 100% 보상해야 합니다”
A사의 B제품은 6월말 현재 경기 강화 뿐만 아니라 김포, 이천 등 경기도 지역과 충남 보령에서도 같은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 피해면적은 경기에서 15만평, 충남에서 15만평이다. 모내기철이 늦은 것을 감안하면 점차 남부권으로, 전국으로 확산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거의 모든 제조회사의 제품에서 간헐적으로 발생
서해안 지역의 광활한 평야지, 충남 서산. 이곳에서는 E사의 F액상수화제가 문제가 되고 있다. 대단위 논이 많아 요즘 새로운 살포방법으로 등장하고 있는 무인보트를 이용해 살포했다고 한다. 그런데 살포 후 모가 백화현상을 나타내며 생장을 멈추었다는 것이다.
영양제로 응급처방을 하고 있던 한 농민의 말이다. “잡초가 하얗게 죽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홍보하더니 잡초가 아닌 모가 하얗게 죽어가고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수도용 제초제의 약해 증상은 경기, 강원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나타나고 있다. 위로 경기도부터 아래 경남까지 한반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본지의 조사 결과 경기 포천(G, H제조회사), 강원 춘천(E제조회사), 철원(I제조회사), 평창(I제조회사), 강릉(I제조회사), 충북 보은(E, L제조회사), 충남 논산(E제조회사), 부여(I제조회사), 전북 김제(G, J제조회사), 장수(L제조회사), 전남 순천(K제조회사), 경북 영덕(L제조회사), 의성(K제조회사), 예천(G제조회사), 상주(I제조회사), 경남 양산(A제조회사), 하동(A제조회사), 함안(J제조회사) 등 전국에서 발생하고 있다.
제조회사 역시 특정회사가 아닌 거의 모든 회사의 제품에서 나타나고 있다. A, E 회사는 물론 G, H, I, J, K, L 등 국내의 거의 모든 회사가 관련되어 있으며, 이들 회사의 약 10여개 제품에서 약해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
유명 원예용 살충제에도 약효미흡 민원 제기
수도용 제초제 뿐만 아니라 원예용 제품에서도 곳곳에서 약해, 약효미흡 민원이 제기되고 있다. 사과와 고추 주산단지로 유명한 충북 충주에서는 I사의 원예용 살충제 M제품에 대해 약효미흡 민원이 제기되었다. M제품은 국내 원예용 살충제에서도 뛰어난 효과로 큰 인기를 얻는 제품이다.
그동안 특별한 민원이 제기된 적은 없으나, 올해 사과 및 고추나방에 대해 효과가 미흡하다는 민원이 제기되었다. 인근 지역 일부 농가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향후 동일한 민원이 확대되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원예용 농약 역시 전국적으로 약해, 약효미흡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충북 충주에서는 사과 작물에 L회사의 제품이, 충북 괴산에서는 배추 작물에 G회사의 제품이, 경북 청송에서는 고추작물에 E회사의 제품이 각각 효과미흡 현상을 일으켰다. 경남 하동에서는 수박과 콩·매실 작물에 J회사의 제품이 순멎음·낙과·낙엽 등의 약해현상을 일으켰으며, 경남 산청에서는 I회사의 제품이 양파 잎이 넘어지는 약해현상을 일으켰다. 제주에서는 E회사의 유명 비선택성제초제에서 약효미흡 현상이 나타났다.
원제 확실한 농약, 발견되지 않은 결함 있을 수 있어
지역과 작물을 가리지 않고, 제조회사와 제조제품을 가지리 않고 전국적으로 모든 회사의 제품에서 간헐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약해.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전국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각각의 약해·약효미흡 사고에 대해서는 현재 원인규명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향후 후속기사에서 원인을 다루기로 하고 이번 호에서는 포괄적인 원인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먼저 제품 자체가 가지는 근본적 결함에서 발생하는 경우이다. 물론 농약은 철저한 시험성적과 평가작업을 거치기 때문에 원제 자체가 가지는 결함은 매우 드물 것이다. 하지만 농업은 살아있는 생물을 대상으로 하며 각각 작물과 포장의 환경적 요소가 매우 다양하다. 또한 살아있는 변화무쌍한 기상을 대상으로 한다. 때문에 일반적인 실험으로는 미처 확인하지 못하는 결함이 있을 수도 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아직 발견되지 못한 결함 또는 결정적 요소 때문에 약해·약효미흡이 발생할 수 있다.
처방·제조의 과정에서 제품불량 나올 수 있어
또한 원제와 부자재를 이용하여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의 품질관리도 약해를 일으킬 수 있다. 원제의 품질은 확실하지만 부자재에 결함이 있거나, 또는 처방·제조의 과정에서 품질관리에 이상이 있어 제품불량으로 연결될 수 있다. 올해 강원 강릉에서는 I회사의 수도용 제초제 N제품이 제품불량의 의혹을 낳고 있다. 직접살포정제인 N제품의 제형이 논물에서 녹지않는 현상이 발행했기 때문이다. I회사는 소비자 보호의 차원에서 문제 제품에 대해 교환을 실시해 주었지만, 제조의 과정에서 어떤 이상이 생겼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이밖에도 I회사의 O제품이 강원 평창 배추작물에서, E회사의 P제품이 강원 춘천에서 제품불량의 불편한 시선을 받고 있다. 각각 응고현상 및 층 분리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원제에 대한 품질 검사는 적격품이겠지만, 그 외 부자재의 품질관리 및 처방·제조과정에서의 철저한 품질관리가 요구되는 대목이라 하겠다.
드론·보트 방제, 사용방법별 안전성 확인했을까?
약해·약효미흡의 원인은 제조회사의 사전 검증력 미흡에 또 하나의 큰 원인이 있다. 농민들의 다양한 사용조건, 다양한 사용방법에 대해 제조회사가 사전에 각각의 경우별로 충분히 안전성을 검증했느냐는 것이다. 고령화시대를 맞아 생력화제형 및 간편한 제형이 많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농민들은 제조회사보다 더 빨리 더 다양한 방법을 응용하여 농약을 살포하고 있다.
액상수화제 제형의 제초제를 논 안이 아닌 논 밖에서 고압식 분무기로 살포한다든가, 또는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드론·무인보트를 활용하는 등 사용방법이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사용방법들은 농약이 작물에 접촉하는 방법과 방향과 양이 각각 다를 것이다. 제조회사들은 각각의 경우별로 모든 실험을 다해 보았을까? 특히 요즘 새로운 방제방법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드론이나 보트에 대해서도 적절한 사용방법을 실험하고 정립화하였는지 궁금하다.
제조회사들은 인력과 시간과 비용의 한계가 있다고 항변하겠지만 약해·약효미흡 현상을 줄이기 위해서는 제조회사의 보다 확실하고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농촌진흥청 등 관계기관에서도 새로운 방제방법에 대한 살포기준 및 안전사용기준을 시급히 정립해야 할 것이다.
좋은점 위주의 홍보자료, 약해·약효미흡 정보 미흡
제조회사가 확인한 약해·약효미흡 현상의 원인에 대해 제조회사가 얼마나 교육 홍보했는지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제조회사들은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약해·약해미흡과 관련한 많은 정보를 축적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광고용 자료를 보면 대부분 특장점 및 좋은점 위주로 작성되었을 뿐, 약해·약효미흡 예방을 위한 정보제공은 지극히 적다. 대표적으로 회사 카다로그 및 리플렛, 또는 제품 라벨을 보았을 때 약해·약효미흡 예방을 위한 주의사항은 맨 마지막에 가장 작은 글씨로 처리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약해·약효미흡 현상 예방을 위한 대책으로 대농민 교육·홍보를 이야기하자면, 작물보호협회나 작물보호제판매협회의 책임도 있다. 작물보호협회는 제조회사들의 협의체로서 제조회사들의 약해·약효미흡 정보를 취합하여 종합적인 대책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작물보호제판매협회는 전국에 산재해 있는 작물보호제 판매상들의 협회로서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다양한 약해·약효미흡 현상과 원인을 정보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 단체 모두 대농민 교육 홍보에 소홀히 해 왔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교육·지도사업 중점둔다던 농협, 판매점으로 전락한건 아닌가?
그리고 마지막 원인으로 농협의 교육·지도기능 부재를 꼽지 않을 수 없다. 농협은 농민 조합원들을 위한 조직으로 그 어떤 농업기관보다도 많은 정보와 촘촘한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다. 경제적 여력도 충분하다. 마음만 먹는다면 전국적인 정보를 취합, 분석하여 약해·약효미흡 교육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농협은 작물보호제 계통사업에 있어 어떠한 정보를 제공하기 보다는 판매만을 위한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수도용 제초제 민원이 발생한 지역의 한 농민은 이렇게 말한다. “그냥 농약 판매점일 뿐이죠. 농약지식도 일반 농약방보다 떨어지고요. 다만 외상이 되고 가격이 조금 더 싼거 같으니 이용하는 것이지요. 그냥 똑같은 농약 판매점이라고 생각해요.”
취재가 진행되는 6월. 전국의 농토는 푸른빛을 더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더 그 안으로 들어가면 약해에 대한 농민들의 한숨과 걱정이 있었다. 제조회사들의 시간적, 경제적, 인력적 한계에도 충분히 공감하지만 백년고객인 농민들의 한숨과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제조회사들의 더 큰 세심함과 준비성이 요구된다 하겠다. 더불어 농협의 교육사업 강화가 절실히 필요하다 하겠다.
몇 년전 농약제조회사 H사는 과수시장을 확대하던 Q제품이 경북지역에서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자 자체실험을 거친후 농민들에게 관련 사실을 공개하고 과감하게 과수시장에서의 등록사항을 모두 자진 취소한 바 있다. 더 나아가 관련 원제 공급사에 요청하여 전 세계적으로 등록내용을 취소하게 한 바 있다. H사같이 농민고객을 먼저 생각하며 멀리 내다보는 안목이 필요하다.